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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토도] 발칙한동거2


2.

아츠시는 어릴 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어 했다. 넓은 집과 거기에 걸맞는 넓은 정원, 그리고 돌봐줄 많은 고용인들과 동물을 좋아하는 부모님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츠시는 개를 키울 수 없었다. 그의 첫 소원을 이루지 못한 건 그의 환경이 아니라, 그 자신 때문이었다. 동물 털에 알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발짝 양보해서, 적어도 귀여운 동생-부모님은 아츠시를 낳은 이후로 아이를 더 이상 가지고 싶지 않아했다- 그것마저 되지 않는다면 동네에 아는 동생이라도-아츠시는 그 동네에서 가장 어린 아이였다-그럼 학교의 후배라도 원했고. 이렇게 미루고 미뤄서 결국 얻어낸 후배를 마주하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뭔가 달랐다. 몇 번을 양보하다보면 본질을 잊어버리니까. 그래서 아츠시는 더 이상 양보라던가 미루는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뭔가를 얻는다는 건 뭔가를 잃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성장을 했음에도, 처음을 시작으로, 아츠시는 이상하게도 자신이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했다.

초등학교3학년 때, 작문대회가 학교에서 열렸다. 교내에서 3위 안에 든다면, 시에서 주최하는 큰 대회에 나갈 수 있었고, 아츠시는 상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었고, 작문이라는 걸 해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처음 마주한 큰 대회가 마음에 들었다. 참가하고 싶었고, 조금 더 욕심을 내, 그 대회에서 작은 상이라도, 아니 큰 상을 받고 싶었다. 그 나이의 아츠시는 뭔가를 해도 어느 정도 잘 한다는 얘기를 들어왔고, 어쩌면 나는 천재가 아닐까라는 어릴 때의 치기와 그걸 타인에게도 그것도 공적인 자리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당연한 욕구가 합쳐졌다. 그게 그의 두 번째 소원이었다.

아츠시는 그 날 이후로 열심히 글을 적었다. 주최하는 담당 선생님의 취향을 분석하고, 채점기준을 확인하며, 소위 합격할 수 있는 글을 적었다. 근 한 달간 작품을 받았는데, 아츠시는 가장 먼저 준비를 시작했고, 가장 늦게 출품했다. 그 기간 동안 아츠시의 머릿속에는 오직 글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큰 대회에 참가할 티켓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합격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상을 거머쥘 수 있을까. 더 이상 양보는 없다고 생각했고, 아츠시는 그 목표만을 향해 최선을 다해서 달렸다. 그리고 얻은 것이라고는.

자신이 글을 쓰는 것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마주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아츠시는 상에 대한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다. 중학생이 되서야 아츠시는 그 때의 생각을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서 주최하는 대회는 그 이후에도 많았다. 아츠시가 가장 자신 있는 수학이라던가, 과학, 물리, 지리, 사회, 영어등 기타 외국어, 스피치, 토론, 육상, 축구, 야구 등 원한다면 언제든지, 다른 분야로 참가를 할 수 있었다. 근데 왜 하필, 가장 못하는 글로 큰 대회를 나가고 싶어 했을까.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소원이라는 건 자신이 이룰 수 없으니, 신이라던가 그 신이 부여하는 운으로 이뤄진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고, 별자리 따위의 운세를 보기도 하고 하물며 우주에서 떨어지는 운석 따위에도 빌어대는 것이다. 소원을 이뤄주세요. 이뤄주세요. 이뤄달라는 것의 의미는 하나다.

나는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을 아츠시는 소원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다. 그가 어떤 노력을 해도, 양보를 해도 해낼 수가 없다. 단지 빌고 기다릴 뿐인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될 리가 없으니.

아츠시가 세 번째 소원을 가졌을 때,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의 세 번째 소원은 마츠노 토도마츠였다.

처음부터 토도마츠가 그의 소원이 된 것은 아니었다. 아츠시는 남의 마음을 얻는 것에 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러지같은 몸의 거부라던가, 타고 나지 않은 재능 따위가 아니었다. 아츠시의 자신 있는 분야였고, 게다가 토도마츠도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관심이 있었던 게 분명하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걸 괜히 소문을 내고 다닐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거절을 당하니 아츠시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미친듯이 글을 썼던 기억이 났다. 버젓이 컴퓨터가 있는 시대였음에도, 작문은 수기로 받았기에 아츠시는 공책을 백 권은 넘게 사용했을 것이다. 지우고 적고 다시 지우다보면 종이는 쭈글쭈글해졌고, 그런 공책을 제출할 순 없으니 다시 새 공책을 펼쳤다. 아츠시에게 있어서 그 백 권의 앞 쪽만 지저분한 공책들은 그 안의 뭔가를 인정시켜주는 것이 되었다.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처절하게 노력하고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애도였다. 이런 행동을 하느니 차라리 알 수 없는 종교에 빗대 절이라도 하는 꼴이 더 생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자신의 상황도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했다. 실패를 예감하는 느낌. 기분 나쁜 미래가 그려지고, 그것에 대해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피하라는, 피하고 싶다는 본능의 욕구들. 그리고 아츠시는 그 욕구들을 다 무시한 채로 토도마츠를 세 번째 소원에 올린 것이다. 분명히 그는 배웠다. 양보를 해봤자 자신이 얻을 것이라고는 원치 않은 것이고, 그렇다고 그 소원을 위해 노력을 하느니 그냥 멀리서 기도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그게 더 확률이 높을 거라고. 알고 있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뭐 사랑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니겠나싶었다. 아츠시는 개를 사랑한 것도 큰 대회의 상을 사랑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가지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뿐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인 토도마츠는 달랐다. 이건 사랑이고, 그의 사랑이라는 건, 양보를 해, 먼발치에서 그를 보기만 해도 기뻤으며, 그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노력을 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보람찼다.

아츠시는 처음으로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를 즐겼다. 그러다보니 가장 좋은 형태로 이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도마츠와 동거를 하게 되었으니. 아츠시는 토도마츠에게 이 제안을 물었을 때가 그와 동거한 지 반 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벚꽃이 흩날리는 졸업식에서 교복을 입은 토도마츠는 귀여웠고, 그와 같은 얼굴인 형제들 사이에서도 빛이 나 구분이 가능할 정도였다. 아츠시는 몇 번이고 연습했던 말을 그냥 상투적인 말들 사이에 섞어서 한 번 던져보았다.

“나, 너랑 같은 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룸메이트가 있으면 좋겠어서. 어때?”

“응? 아 그래.”

별 감흥 없이 토도마츠는 대답했다. 그 이후로 다시 몇 마디를 나누었고 헤어졌지만, 그 이후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 ‘그래’라는 말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토도마츠는 소원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연인이 아니었을 까라는 멍청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때였다. 기쁨에 겨운 아츠시는 간과하는 자신의 삶의 법칙이라는 게 있었다.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토도마츠의 말을 빌리자면, ‘아츠시는 중학교 때부터 알았던 사이로, 남자를 좋아하는 성향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하다싶을 정도의 사람.’ 남자를 좋아하는 성향 아니 정정하자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것만 같은, 열등감 덩어리의 마츠노 토도마츠를 좋아하는 것을 제외하면 완벽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완벽이라는 건 조금만 흐트러져도 그런 말을 붙이지 못하는 견고한 단어다.

다시 말하면, 완벽한 사람은, 자신의 유일한 단점으로 인해, 최악까지.





@dlt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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