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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바] 2535 - 3

회사원사쿠라이x카페알바아이바

 

3.

 

쇼는 라떼를 마시며 천천히 걸어갔다. 평소보다 조금 더 쨍한 햇빛에,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평소와 같은 시간인 오전 8시 12분. 여름이 오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벚꽃 놀이도 가지 못 했던가. 아이스 라떼가 어울리는 계절이 왔지만 그는 전혀 기쁘다거나 그렇다고 해서 슬프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그는 마냥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모든 인생처럼.

쇼가 일하는 부서는 마케팅부다. 대기업의 위계질서가 그나마 적은 부서. 그렇기에 쇼는 입사 후 곧바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애초에 그가 그걸 생각하고 지원한 부서였다-2년차가 채 되지 않은 사원임에도 기업의 마케팅의 기획안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의 막내 축에 속하기에 해야만 하는 잡일들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할 일이 동기들 보다 더 많다. 당장 그의 가방 안에 있는 스케줄러를 열어보면 알 수 있다. 아니 그가 출근하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쏟아지는 윗선들의 명령조의 부탁과 책상에 쌓여있는 서류들, 컴퓨터 바탕화면에 남아있는 채 완성하지 못 한 기획안들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쇼는 계획적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정도다. 마사키의 카페에서 나와 걸어가는 2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는 오늘 해야 할 것들의 시간 분배를 하고, 채우지 못 한 기획안을 채워나간다. 이 시간 동안 멍하니 도로를 바라본다거나, 하늘을 보고 구름의 모양이라도 본다거나, 혹은 등교를 하는 학생들을 보며 추억에 잠기는 것도 하지 못한다. 그의 계획에 들어있지 않으니까. 피곤하게 산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오피스 거리로 들어오자 수많은 회사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쇼도 발을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 사원증을 찍고 엘리베이터에 겨우 끼여서 올라와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머릿속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거래처에 전화를 돌리고, 하청업체가 어젯밤 보낸 메일을 확인하고, 수정할 것을 상의할 회의 자료를 준비한다. 하아. 조금 숨을 돌리는 틈에 책상에 놓아둔 라떼를 보니, 밑에 물기가 흥건했다. 서랍 안에 들어있는 코스터를 꺼내는 걸 깜빡했다. 아. 짜증나. 쇼는 손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고 얼음이 녹아 밍밍한 맛이 나는 라떼를 주욱 마셨다. 공기가 섞이는 빨대소리에 컵을 흔들어보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젠 기획안을 적어야한다.

마케팅이라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져야함과 동시에 기업의 이미지를 나타내야하는 일이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것들이 필요하다. 결국 이 일은 쇼와 어울리지 않는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다보면 결국 대체되는 인원이 되기 십상이고, 무슨 일을 하든 낙하산이라는 딱지가 붙은 그에게는 대체 가능한 사람이 아닌 없어서는 안 될 인재로 다른 이들에게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쇼는 어제 쓰다만 기획안을 띄웠다. 쓰다 말았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상사에게 받은 기본적인 의도와 목적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하얀 창을 띄워 놓고 쇼는 멍하니 그것만 보고 있었다.

기존에 판매되던 1인용 쇼파가 리뉴얼 되었고 쇼는 그것을 잘 소개하기 위해 기획을 해야 했다. 그의 목적은 안락함과. 행복이었다. 쇼파에 앉기만 해도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끔 해야 한다.

“행복이라….”

쇼는 자판을 의미 없이 톡톡 내려쳤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빈 일회용 컵을 봤다. 쇼에게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뭔가를 해서 행복하다는 건. 음. 쇼는 흰 화면을 멍하니 봤다. 오늘 마사키가 입었던 니트가 흰색이었지. 커피가 조금이라도 튀면 지우기 힘들 텐데. 괜찮으려나. 그래도 가게의 앞치마가 갈색이라 그에게 꽤나 잘 어울렸다. 머리도 조금 어두운 갈색이니까. 그러고 보면 그 갈색 앞치마의 리본 끈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허리가 얇겠다. 그런데도 리드를 닫을 때의 손을 보면 크고 생각보다….

“사쿠라이.”

“…아, 네!”

“뭐해. 점심 먹으러 가자.”

옆 자리에 앉은 선임의 말에 쇼는 고개를 번뜩 들었다. 그리고 마주한 건 아침과 똑같은 하얀 기획안과 벌써 정오를 보이는 시계였다.

‘미치겠네,’

쇼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먼저 가는 선임을 따라갔다. 점심을 먹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기획안의 목적과 아이바 마사키뿐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회사 근처의 카페에서 아이스 라떼를 사 마셨다. 분명 마사키의 것보다 깊은 맛이 나고, 따지자면 자신이 더 좋아하는 맛인데도 만족감이 들지 않았다. 아. 쇼는 뭔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행복이라는 건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일상의 작은 것들. 그러니까 아침에 그를 만나는 거라던가. 가벼운 대화를 하는 것들. 그래. 쇼는 씩 웃었다.

그 이후로 기획안은 술술 잘 풀렸다. 자칫 보면 평범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기획안이었지만 안정을 추구하는 윗선들이 좋아할 만 하다며 팀장의 OK사인이 떨어졌다. 그가 계획한 것은 이제 조금 있으면 시작할 회의뿐이었다. 이 회의는 자신이 자료를 준비하지만, 딱히 발언권이 없기도 했고, 기획안에 참여도 하지 않았기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회의였다.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쇼는 머리를 굴렸다. 계획상으로는 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지만, 주말에 할 수 있는 업무들이었고, 남아있는 반차나 연차도 있었다. 그에 대한 계획들도 이미 짜 놓았지만 오늘은 어쩐지. 정말 특이하게도. 그것들을 깨고 싶었다.

“저 혹시….”

쇼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반 사원이었다면 되도 않는 소리 말라며 타박을 했을 만한 소리지만 팀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쿠라이니까. 라는 말을 하면서. 충분히 비꼬는 소리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머리에는 이미 다른 걸로 가득 차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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