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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아이]최선

짝사랑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서 좋아하고 싶어.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바보 같은 말.”

니노미야는 문득 생각난 바보의 말에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정말. 바보 같기는. 신주쿠 번화가의 길거리에 앉아서 니노미야는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와 닿지는 않았다. 고개를 올려서 하늘을 봤다. 날씨 좋네.

언제더라. 이 말을 들었을 때가. 니노미야는 살짝 미간을 찌푸려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히 기억은 없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울고 있었는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여름이었겠네. 여름이라. 그러고 보니 슬슬 그럴 시기인가. 니노미야는 파란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다시 일어나 인파 속에 섞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른 이들처럼 뭔가의 방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몸은 신주쿠의 거리에 있지만 기억은 어릴 때 살았던 치바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까, 5월의 마지막 날과 푸르른 신록. 후덥지근한 기온. 그리고 교복을 입은 아이바 마사키.

 

“나 사귀는 사람이 생겼어.”

귓가에 울리는 말은 달콤한 숨소리와는 전혀 다르게 꽤나 씁쓸한 의미를 전해왔다. 굳이 귓속말을 하면서까지 해야 할 말이었을까. 알고 있었어. 니노미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빨리 누구인지 물어보라는 표정의 아이바를 보면서 니노미야는 그에 응했다.

“누구.”

“누구냐면-.”

조금 붉어진 얼굴에 환하게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아이바를 보면서 니노미야는 귀를 닫았다. 귓속말을 한 것이 웃길 정도로 신나게 말하는 목소리를 그냥 뭔가의 음악처럼, 하나의 멜로디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 듣기 싫으니까. 니노미야는 아이바를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신나게 떠드는 입술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달려와서는 주어진 10분을 다 채울 참인지, 아이바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니노미야는 듣는 척도 하지 않은 채 그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바의 멜로디에 익숙한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수업이 시작하는 소리다.

“아. 종쳤네.”

“어 벌써? 그럼 끝나고 다시 올게. 수업 잘 들어!”

일어나서는 손을 흔들고 들어왔을 때처럼 아이바는 달려갔다. 교실의 문에서부터, 옆 반인 자신의 반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복도 창문으로 보였다. 아이바의 머리는 빛을 받으면 약간 흑갈색으로 변하는데, 니노미야는 그 머리카락이 뛰어갈 때 흔들거리는 모습이 좋았다. 뭔가 만지면 부드러울 것 같다. 아이바의 집에 있는 강아지처럼. 니노미야는 그와 오래된 친구인데다 집도 가까워 자주 왕래하는 편이었고, 자신의 주인처럼 낯을 꽤 가리는 강아지도 그에게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 정도지만, 니노미야의 손은 거기에 닿은 적이 없다. 뭐. 신장차이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글쎄. 니노미야는 괜히 손을 쥐었다 폈다.

만지고 싶다고 하면 분명 그렇게 해줄 것이다. 그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니까. 근데 그 일이 니노미야에게도 그렇다고 하면, 절대 아닐 것이다.

아이바 마사키는 뭔가 하나에 꽂히면 그 얘기밖에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는 1교시가 끝나는 쉬는 시간부터, 점심시간 그리고 마지막 교시가 끝날 때까지 매번 찾아와서는 그의 얘기를 늘어놓았다. 니노미야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책상 서랍에는 매주 월요일에 새로 구매하는 CD와 플레이어로 쉬는 시간을 보내지만, 오늘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사실 있는 것도 잊어버렸다. 아이바의 말은 나름 좋은 멜로디를 가지고 있으니까. 가사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요약하자면 반에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고, 눈치가 느린 아이바는 그것도 모른 채 휴일에 자주 만나기도 했었나보다. 그러다 보니 좋아졌고, 뭐. 어찌 되었든. 이 대부분의 과정을 니노미야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굳이 저 여자애가 널 좋아하는가보다 라는 힌트는 주지 않았다. 줄 필요가 없었지. 그야. 뭐.

“아, 그래서 한동안은 같이 집에 못 갈 거야. 오늘은 같이 패밀리레스토랑에 가기로 했어.”

그런 정보는 필요 없는데. 니노미야는 손을 흔들었다. 뒷문에 서있는 여자아이의 더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표정이 보였다. 어우. 꽤나 힘들겠는데.

“응. 잘 가.”

“내일 봐!”

니노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바의 뛰어가는 뒷머리가 보였고, 자신의 연인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니노미야는 고개를 돌려 서랍의 플레이어를 꺼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재생했다. 아. 일 분도 채 듣지 못하고 이어폰을 뺐다. 이번 CD는 실패다. 꽤나 기다렸던 가수의 컴백 앨범이었는데. 어쩐지 말이야.

“예전과는 전혀 달라졌잖아.”

창밖으로는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니노미야는 창으로 가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아이바와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음. 니노미야는 손을 칼처럼 세워 그 둘의 맞잡은 손을 가르는 시늉을 해보았다.

 

쪼록.

니노미야는 다 마신 아이스티를 길바닥에 버린다. 걷다보니 신주쿠의 번화가에서 벗어나 높은 회사 건물이 잔뜩 있는 오피스가로 들어왔다. 화려한 옷을 입던 주위 사람들이 어느 샌가 다 비슷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저기요.”

뒤에서 누군가가 부른다. 니노미야는 고개를 돌린다. 딱 봐도 규범만을 지킬 것 같은 남자다. 빗어 넘긴 머리에 깔끔한 안경이 돋보였다. 니노미야는 그를 빤히 보고만 있었다.

“이거 다시 주우세요.”

턱짓으로 방금 버린 일회용 컵을 가리킨다. 니노미야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미안미안-.하고 줍는다. 그리고는 그 컵을 안경에게 내민다. 곧게 보이는 이마가 찌푸려진다. 니노미야는 그게 웃긴다. 그가 크게 웃을수록 주름은 더 심해진다.

“여기가 처음이라-. 쓰레기통 어디 있어?”

니노미야는 고개를 살짝 갸웃해본다.

안경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다.

 

아이는 쉽게 질리고는 한다. 아이바는 아이 같은 면모가 있었고, 솔직히 니노미야는 그가 금방 연인에게 질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의 모든 연애가 그랬었으니까. 근데 말이야. 아이는 조금이라도 눈을 떼면 훌쩍 커버리더라고. 오랜만에 본 할머니가 작아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든 것처럼.

그래도 아이바는 약간의 의리라는 것이 있었다. 친구에게 솔직한 것. 그냥 상황보고 같은 것들.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그에게 다 말하는 거. 의리라고 해야 할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기가 힘든 건지 어찌 되었든 그건. 니노미야에게는 딱히 필요가 없는 행위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싫지는 않았다. 아이바와 같이 하교를 하지 않게 된 이후부터 구입하는 CD마다 실패였고, 그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멜로디는 아이바의 목소리뿐이었으니까. 예전에 구입한 것들을 들어보았지만, 뭔가 와 닿는 느낌이 없었다. 아이바의 말들처럼.

니노미야의 시선은 입술에서 내려와 아이바의 얇은 팔에 닿았다. 마른 사람이지만 어느 정도 체격은 있어서 동복을 입으면 잘 모르지만 이렇게 하복을 입으면 팔이 다 드러나니 금방 알게 된다. 계절이 바뀌려나. 아이바는 더위를 꽤 타는 편이다. 그에게 춘추복은 딱히 없이, 4월이 되면 하복만 고집한다. 일교차가 심해 아침에는 꽤 추워하면서도 굳이 그런다. 그래서 니노미야는 4월이 되면 아침에 가디건을 하나 들고 나오곤 했었다. 아이바의 몫으로. 근데 이젠 전혀 그럴 일이 없어서, 4월이 벌써 중순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음. 조금 짜증이 나네. 니노미야는 머리를 긁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입학할 때부터 중간에 묘하게 멜로디에 벗어나는 음이 끼어있는 소리라 싫어했지만. 적어도 이 쓸데없는 발견보다는 더 듣기 좋을 것이리라.

“아, 수업 시작하겠다. 먼저 갈게.”

“그래그래.”

아이바는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일부러 보는 척을 하며 일어났다. 항상 잘 잃어버리는 주제에 자랑은 하고 싶어서. 분명 선물 받은 거겠지.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아니 묻기도 전에 아까 말하지 않았나. 어제던가.

“오늘 끝나고 같이 가는 거다?”

그런 말도 했었나. 니노미야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바의 뒷머리를 보다가 문득 그가 어디를 가자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려 더듬어 보지만, 아이바의 멜로디만 들려올 뿐 가사는 일절 들은 적도 없었다. 뭐, 조금 있으면 알겠지. 마지막 수업은 니노미야가 좋아하는 음악수업이었지만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하겠지만. 사실 아이같은건 아이바가 아니라 니노미야 자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이내 지웠다. 교복을 입고 있으니까.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잠깐 주어진 달콤함에 설레는 것도. 당연하다고.

그리고. 음 이 뒤는 기억이 없다. 자신의 좋은 점을 말하자면 싫어하는 기억들은 금방 지운다는 점이다. 아마 손목시계의 보답으로 뭔가 선물을 주고 싶었고 고르는 걸 도와달라는 거였겠지. 그 때의 연애는 다 그런 거니까. 뻔하고 시시하다. 그 시시한 걸 그는 시도도 못했지만.

 

“저기에는 있으려나―.”

니노미야는 살짝 고개를 돌려 근처의 호텔로 시선을 옮겼다. 피식하고 안경이 웃는다. 그리고는 대답 없이 거기로 향한다. 음. 역시 아직 감은 죽지 않았어. 니노미야는 웃으며 따라간다.

니노미야는 감이 좋다. 아이스크림 뽑기를 하면 대부분 당첨이었고, 제비뽑기나 사다리 타기를 해도 어느 정도 이득은 취할 정도였다. 타고난 운이 좋기도 하거니와, 그의 눈치도 뒷받침이 되었다. 여자보다는 남자에 설레어하던 자신을 마주한 순간이 꽤나 어렸었으니까. 그리고 상대가 그런지 아닌지도 금방 체크할 수 있었고. 그리고 그걸로 인해 금방 포기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바만큼은 잘 되지 않았다. 글쎄. 조금 탓하자면 아이바의 ‘좋아’가 사랑으로 변한 걸 본 적이 없어서일까. 비즈니스 호텔은 오랜만인데. 침대가 불편하면 귀찮을 텐데. 니노미야는 체크인을 하는 안경의 뒷모습을 봤다. 그도 빛을 받으면 흑갈색의 머리다. 그렇지만 뛰지는 않겠지. 업무미팅에 늦는 일도 만들지 않을 거고, 쓸데없이 뛰는 행위를 싫어할 것 같다. 응. 그렇겠네.

 

아이바의 연애는 꽤 오래갔다. 1년이 좀 넘게까지 함께였으니까. 하지만 결국 여자 친구에게 너는 날 좋아하는 건지 확실히 모르겠어. 라는 말을 듣고 차였다. 그래 그럴 것 같았다. 친구와 여자 친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행동을 꽤나 자주 했었으니까. 상황을 아이바를 통해 듣기만 해도 알 정도로. 그렇지만 니노미야는 한결같이 힌트를 주지 않았다. 그게 그의 마지막 의리였다. 친구에게는 솔직하게. 아이바는 예상 외로 엄청나게 울었다. 사랑인지 아니면 정인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반의 친구가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울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네가 다 잘못한 거지. 좋아함과 사랑은 구분할 줄 알아야해. 하지만 니노미야는 그 힌트도 주지 않는다. 분명 아이바는 그럼 뭐가 다르냐고 물을 거고, 자신은 그 예시로 분명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음을 말하고 말테니까. 일 년이 넘도록 하나의 멜로디만 듣는 것에 물렸다. 이 신물이 날 정도인 아릿한 감정도, 끌어 오르는 짜증도,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해 신난 아이바 마사키같은 것도. 아이바는 한참을 울다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서 좋아하고 싶어.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그 바보 같은 말에 솔직히 그 때의 니노미야는 감명을 받았다. 나는 후회 없이 너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그러니까 더 이상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내가 네 옆에 있겠노라고. 그 말에 니노미야는 이렇게 대꾸한 것 같다.

“넌 힘들걸.”

내가 알려주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도. 그 날 이후로 다시 평범한 날들이 지속됐다. 아이바와 함께 하교를 하고, 가끔 그가 연인이 생기면 안 그러기도 하고, 다시 울면서 같은 말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니노미야는 도쿄로 대학을 오고, 아이바는 치바에서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았고. 이제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기는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바를 향한 니노미야의 감정도 애매해졌고. 그냥 가끔 이렇게 생각나는 정도라고 니노미야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바와 어느 부분이라도 닮은 사람을 도쿄에서 찾고 있고, 어떻게 해서라도 만나고는 한다.

사실 그는 아이바에게 물었어야했다.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좋아하지 않는 방법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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