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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토도] 네개의 겨울이 지나고

1월 디페 아츠토도쁘띠온에 나올 예정입니다

40p내외 5000원.

세개의 계절에서 이어집니다. 약간의 카라토도가 있습니다.

아츠시에게는 해피엔딩입니다. 


선입금폼 >>http://naver.me/GnrbI5rN 

통판폼>>http://naver.me/x4oUdKZT


표지샘플입니다
표지샘플입니다


계절이 지나가매, 사람은 변한다.


우웅. 아츠시는 선잠이 들었다가 스마트 폰의 진동소리에 손을 더듬었다. 어디에 뒀더라. 멍한 머리로 침대 위를 더듬었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우웅. 다시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손을 옮겼다. 이 시간에 두 번이나 연락이 오는 걸 보면 여간 중요한 일인가 보다. 토요일 새벽인데. 겨우 잡은 스마트 폰을 집어 일어나 앉았다. 아직도 잠이 깨지 않아 눈을 비비자 뒤에서 부드러운 팔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팔에 손을 가볍게 올렸지만 여전히 잠은 깨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연락이 와서.”

“일?”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손등에 살짝 입을 맞췄다. 숏 컷에 큰 눈, 그리고 분홍색을 좋아하는 그녀는 딱히 마음에 들지도 그렇다고 싫지도 않은 자신의 여자 친구다. 그녀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겨우 떠진 눈으로 화면을 봤다. 라인이 와있었다. 일인가. 어라. 의외의 사람이라 아츠시는 눈을 크게 떴다. 그 표정에 그녀는 크게 웃었다.


“뭐야-. 그런 표정 처음 보는데.”


아츠시는 표정 변화가 잘 없는 편이었다. 딱 한 사람의 앞에서만 제외한다면. 당연하게도 그 한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연인의 놀림에도 아츠시는 여전히 그 화면만 보고 있었다. 반응이 없는 그가 의아한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누운 몸을 앉아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봤다. 라인 대화창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톳티? 저런 별명을 가진 사람이 친구 중에 있던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딱히 그의 친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잘생긴 사람은 아닌가보네. 꽤 귀여운 프로필 사진을 보고는 그녀는 상대에게서 온 두 개의 라인을 읽어 내려갔다. 별로 관심 없는 일이어서 여전히 꿈쩍하지 않는 아츠시의 허리에 둘렀던 팔을 풀고는 하품을 하고는 다시 누웠다.


“자기, 미팅 나가?”


예의상으로 그에게 질문을 날렸다. 나가든 말든 별로 상관은 없지만. 자신의 말에 여전히 대답이 없는 아츠시를 보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졸려.


던진 질문은 그냥 별 의도가 아니었는지 곧바로 누워 잠이 든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질문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긴 뭐. 그녀도 최근 몇 번이고 미팅에 나가고는 했다. 자신 말고도 다른 남자도 있을 거고, 혹은 뭐 자신처럼 동성의 애인도 있을지 누가 알아. 하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갖는 감정과 비슷했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쉬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곤히 자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 년 만에 연락이 온 그와 지금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그녀는 닮아있었다. 다분 그녀뿐만 아니라 연애를 목적으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검은 색 머리에, 흰 피부. 눈이 크고 입이 작고 전반적으로 귀여운 얼굴에 분홍색이 잘 어울리는. 외견의 문제뿐만 아니었다. 아츠시는 다시 화면을 봤다.


‘아츠시-. 오랜만이야. 잘 지내?’

‘내일 시간 돼? 미팅 있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마츠노 토도마츠. 그와 자신의 예전 연인들이 닮아있는 부분은 또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일부러 그런 사람만 골라왔다. 그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순간 어쩐지 죄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대를 찾아 자위하는 자신의 모습이 짜증나기도 했었고. 아츠시는 머리를 쥐어 싸맸다. 차라리 일의 연락이어서 곧바로 회사로 돌아가는 게 더 나을 지경이었다. 1학년 이후로 그와 대화를 한 적은 거의 없다. 운이 좋게도 그와 다른 반이었고-똑같이 생긴 마츠노들이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지나가는 척 얘기를 할 만한 사이가 아니게 된 것 즈음은 토도마츠도 알고 있었으리라. 토도마츠는 마지막으로 한 얘기를 잊은 듯 점심시간 메이트는 그의 연인으로 바뀌어있었다. 아츠시는 항상 2인분의 도시락을 가져와 바보처럼 옥상에서 혼자 먹어치우고는 했었다. 언젠가 그가 돌아와서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할 날을 기다렸었다. 멍청하게도. 그 멍청함은 지금도 똑같다. 그때와 같은 핸드폰 번호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자신이 보고 싶어질 때 연락을 해도 된다는. 거지같은 순애보. 아츠시는 머리를 싸맸던 팔을 내리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다시 연락이 오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이럴 것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절. 그리고 그 시절로 인해 만들어진 자신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미팅이라. 카라마츠와는 어떻게 된 건지. 아츠시는 미간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기억이 났다. 머리가 유달리 좋은 편도 아니건만 그에 관한 것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토도마츠는 학교를 다닐 때도 종종 그러기는 했었다. 가끔 일정한 날에 자신에게 와서 그에 대한 불만이나 칭찬을 말해주고는 했었다. 그게 얼마나 잔인한 행동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아츠시는 거기서 항상 그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었다. 그의 행위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망가져가는 자존감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게 되겠군. 아츠시는 여전한 그와 변함없는 자신에 치를 떨고는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아츠시는 차가운 물로 머리를 식혔다. 이 짧은 두 개의 라인으로 마음을 흔들리는 자신이 싫었다. 뭐, 이럴 줄은 알았지만. 애초에 그런 사람만 사귄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고는 인정했다. 언제라도 그가 돌아올 것을 생각해 자신을 예전과 똑같이 둔 것은 바로 자신 자체였다. 원한다면 핸드폰 번호도, 만나는 사람의 취향도, 아직도 싸다니는 도시락마저도 바꾸고 잊고 살았을 텐데. 그걸 잊는 순간 후련함과 그냥 그랬었지 라는 막연한 얘기를 하면서 가끔은 웃으면서 그의 얘기를 할 텐데. 나는 왜 잊지 않았을까. 욕실 벽에 머리를 박았다. 차가운 물이 온 몸을 타고 내려 소름이 돋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 나는 잊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츠시는 물을 끄고 몸을 닦지도 않은 채로 욕실에서 나와 물에 젖은 손으로 핸드폰을 잡았다. 그리고는 뭔가에 홀린 듯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좋아. 어딘데?’

나는 잊지 못한 것이다.



“아츠시-. 카라마츠 형이 말이야-.”


아츠시는 읽던 책에서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오고 있었다. 지금은 1학년 겨울 방학식이다. 아츠시는 조용한 교실에서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기가 끝날 때 즈음 유일한 친구였던 토도마츠와 사이가 소원해졌기에 우산을 빌릴 만큼의 관계인 사람은 없었다. 아니 반의 누구라도 자신이 같이 쓰자고 얘기를 하면 기꺼이 받아줄 것을 알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 걸어가는 시간 동안 분명 그들의 입에서 나올 마츠노 토도마츠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실의 칠판에는 수고가 많았다는 여러 학생들의 아쉬운 인삿말들이 적혀있고, 조용한 교실에는 주인을 잃은 책걸상들이 놓여있었다. 겨울 방학. 12월. 그러니까 자신의 앞에서 입을 삐죽 내밀고 연인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 마츠노 토도마츠가 자신을 차버린 게 두 달도 되지 않았다. 그 후에 어색함이라고는 없었다. 그럴 겨를도 없었다. 그와 대화한 적이 없으니까. 오랜만에 하는 대화였지만 감정의 골이 좁아지기에는 오랜만이라고 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듣고 있어?”


눈이 많이 오네. 아츠시는 의미 없는 생각으로 그의 말을 무시하려 했었다. 자신이 그가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눈치 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기사를 부르면 되는 일이었지만, 교실에서 혼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하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혹여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그렇게 재밌지도 않은 책을 들고 읽는 척을 하고 있었다, 뜸을 들이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토도마츠는 그의 책상을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 소리에 아츠시는 겨우 고개를 돌렸다. 표정 관리를 하자고 생각을 했지만 아직은 그의 앞에서 잘 되지 않았다. 분명 지금 우스꽝스러운 표정임은 알 수 있었다. 눈가가 조금 시렸고 입술은 조금 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도마츠는 그의 감정만큼 그의 표정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그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기 시작했다.


“아니 글쎄-. 카라마츠 형이 연극부 연습 때문에 주말에 일박 이일로 여행을 갔었거든? 연습은 그냥 학교에서 하면 되는 걸, 왜 뭣 하러 거기까지 갔대? 아무튼 그래서 이번 주말에 형을 못 봐서 나는 너무 외로웠어.”


투정을 부리는 그 외롭다는 말에 아츠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딘가에 푹 찔린 기분이었다. 한동안 느꼈던, 점심시간마다 혼자 많은 양의 밥을 밀어 넣었던 때의 외면했던 감정이 대놓고 눈앞에서 나타나버렸다. 시린 눈가에 물이 맺히는 것 같아 책을 잡던 손을 꽉 쥐었다. 아츠시의 뜬금없는 행동에 토도마츠는 별 상관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빠르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와서는 피곤하다고 나랑 얘기도 한 번 없이 자는 거 있지? 아니 뭐 옆자리니까 상관은 없지만-. 그러고는 오늘 아침에도 연습 때문에 일찍 가야한다고 먼저 나가 버리는 거야! 나한테 얘기도 없이. 내년에 같은 반이 안 될지도 모르는데!”


삐죽 내밀었던 입을 더 내밀며 토도마츠는 어린 아이처럼 볼을 부풀리고 부우하는 소리를 냈다. 아츠시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손가락으로 눈에 맺힌 것을 겨우 닦아냈다. 진정. 진정하자. 그가 말을 걸어온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야해. 목을 가다듬었다.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잘하는 거니까. 심심한 위로나 해주면 되는 일이다.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대답 없는 그에게 토도마츠가 종용하듯 얼굴을 가까이했다.


“너무하지 않아? 나는 이렇게 기다렸는데?”


너무하다는 말은 내가 써야하는 거 아닐까. 마츠노. 아츠시는 오랜만에 가까이서 보는 그 얼굴에 뭔가 나오려는 속마음을 삼키고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네.”

“맞지? 너무했지? 정말 매정하다니까 그 형은! 누굴 닮았는지!”


자신의 말에 토도마츠는 반색을 하며 반갑게 웃었다. 그를 향한 귀여운 비난에 아츠시는 누구를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안 내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아츠시-. 바빠?”


또. 지금은 2학년 겨울 방학식이다. 다른 반이라 근 일 년 동안 토도마츠와 얘기를 한 날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그 얘기도 그냥 복도를 지나가다 보이면 하는 인사정도였다. 그가 반에 찾아오는 일은 처음이었고. 아츠시는 작년과 비슷한 상황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방학식. 겨울. 뭐지. 고개를 돌려보니 눈이 오고 있었다. 이 작은 마을은 도쿄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초겨울에도 눈이 종종 오고는 했다. 오늘은 우산이 있었다. 작년 겨울 방학식이 끝나고 서럽게 울면서 우산도 쓰지 않고 눈을 맞으며 갔었던 멍청했던 자신덕분에 꽤 오랫동안 감기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준비성은 철저해졌다. 학교의 사물함에 작은 우산을 두기도 하고 일기예보를 종종 보기도 했었다. 감기에 걸린 동안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 악몽에는 당연한 듯 토도마츠와 그와 똑같이 생긴 멍청한 연인이 나오곤 했다. 작년과는 다르게 교실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1학년 때는 토도마츠하고만 다녔던 그였지만 2학년이 되고 나서는 꽤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아니 그는 원래 딱히 그러지 않아도 사람이 모이기는 했다. 방학식에도 다들 아쉬움을 얘기하며 어디로 놀러 갈 지 얘기를 하는 친구들의 사이로 토도마츠가 들어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순간 왁자지껄했던 친구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토도마츠를 볼 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조금씩 유해지기는 했었지만, 자신의 반에 찾아온 그를 보자 다시 묵직하게 눌러오는 감정에 아츠시는 아파오는 머리에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아 안 돼. 최대한 다정하게. 아츠시는 웃으면서 그에게 대답했다. 약간의 세월로 그에게 표정을 숨길 수 있을 만큼 자신은 성장한 것이다.


“왜 그래? 마츠노.”

“잠깐 얘기 좀 들어줄래?”


자신의 교복 소매를 잡아당기는 토도마츠는 예전보다 키가 조금 더 작아져있었다. 자신이 커진 거겠지만, 하복에서 춘추복으로 넘어갈 때 교복을 새로 사기는 했으니까 많이 크긴 했었나보다. 토도마츠는 1학년 때의 키에서 전혀 자라지 않기라도 한 건가. 지나갈 때는 몰랐지만 마주하니 눈에 들어왔다. 아츠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친구들에게 잠깐이라고 얘기를 했다. 자신의 소매를 이끌고 교실 밖으로 나가 사람이 없는 계단으로 이끄는 그는 작년보다 더 왜소해보였다. 살이 빠진 것 같지는 않은데. 또래보다 작은 키라서 그런가. 자신의 친구들이 키가 크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지만 친구들에 비해서 확실히 토도마츠는 작았다. 그 모습에 또 다시 가슴이 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직도 자신은 변함이 없었다. 토도마츠가 계단에 서서 누가 있는 지 없는 지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하지만 아츠시에게는 귀엽게 느껴졌다. 이제 다가올 말은 뭐 전혀 그렇지는 않겠지만. 안도를 하고는 자신의 소매를 잡았던 손을 놓은 토도마츠에게 아츠시는 벽에 기대며 그에게 물어봤다. 최대한 여유로워 보이자. 뭔가 잡혀봤자 좋을 것이 없다.


“무슨 일인데?”

“카라마츠 형이!!”


토도마츠는 신난 목소리로 크게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스스로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다시 양 옆을 둘러보는 꼴이 토끼를 닮아있었다. 아츠시는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다. 여전히 귀여웠다. 자신의 앞에 마주서서는 고개를 내리라고 하는 손짓에 그렇게 차이가 나나라는 생각을 하며 허리를 좀 숙여 그의 얼굴 근처로 고개를 내렸다. 자신도 모르게 올라간 입 꼬리를 내리기는 싫었다. 그를 보며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운 감각이었다. 얼굴을 가까이 하고 토도마츠는 소근 소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되도 않는 비밀연애를 하고 있나보지.


“카라마츠 형이 저번에 일주년이라고 선물을 줬었는데, 열쇠를 줬었거든?”


올라갔던 입 꼬리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변함없구나. 일주년은 무슨.


“근데 열쇠만 준거야. 그래서 뭐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더라고. 근데 있지 오늘 이걸 줬다?”


그러고는 토도마츠는 주머니를 뒤져 아츠시의 눈앞에 작은 보석함을 내밀었다. 보석이라고 하기는 싼 티가 너무 나는 큐빅들이 박혀 있었지만, 꽤 섬세하게 잘 꾸며져 있기는 했다. 어디서 판 걸 사오기라도 한 건가.


“직접 만들었대―. 굉장하지?”

“그러네.”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고는 숙였던 허리를 펴고 그를 내려다봤다. 자랑이라도 하러 온 거였군. 지끈거렸던 머리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감정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꽤 잘 넘어갈 줄 알았건만. 토도마츠는 그런 그의 상황에는 관심이 없는 지 그 열쇠를 목걸이로 하고 다녔다며, 보석함에 열쇠를 꽂아 안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분명 싸구려 액세서리나, 작은 편지 같은 거겠지. 아츠시는 이 행위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뻐하는 토도마츠의 표정을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자신은 전혀 신나지 않았지만. 계단 너머로 보이는 창문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츠시. 졸업하면 대학가?”


하. 아츠시는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신발장을 닫았다. 실내화는 버려야지. 자신이 대학을 가는 것은 이미 학교 입구에 크게 플랜카드로 적혀있는 게이오대 수석입학으로 이 학교를 다니는, 아니 이 동네에 사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3학년 겨울 방학식. 토도마츠는 여전히 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표출하고 있었다. 밖을 확인을 안 해도 눈이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토도마츠가 자신과 어울리는 귀여운 분홍색의 레인부츠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매 겨울 방학식마다 찾아오는 것이 연례행사인 것 마냥-두 번뿐이었지만-교실에서 친구들의 놀러가자는 말에도 선약이 있다며 거절하고 꽤 오래 기다렸건만, 토도마츠는 자신의 신발장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린 게 맞나? 그냥 연극부 은퇴식으로 늦는 카라마츠와 신발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 그가 자신을 발견했다고 보는 게 더 낫겠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꽤 오래 기다렸건만 전혀 보이지 않는 그 덕분에 오랜만에 크게 느끼는 서운함과 짜증이 자신을 부르는 그의 소리에 사그러졌다면 나는 아직도 변하지 않은 거겠지. 자신의 옆에서 올려다보는 토도마츠는 작년보다는 키가 좀 더 커져 있었다.


“축하해. 나는 취직이나 할까싶어. 카라마츠 형이랑 같은 곳에 들어가야지!”

“잘 됐으면 좋겠네.”


묻지도 않았고, 궁금하기는 했으나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던 그에게 토도마츠는 신나서 혼자 얘기를 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 라는 생각이 치고 올라오는 질투심을 막고 있었다. 그래. 마지막이다. 마지막. 더 이상은 안 볼 거니까. 졸업식에도 참가를 하지 않을 예정이다. 더 이상 그 앞에서 여유를 부릴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보이지 않으면 무난하게 잘 지냈었지만, 그와 비슷한 얼굴은 다섯이나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자신의 반에 두 명의 마츠노가 있었고, 아마 쵸로마츠와 쥬시마츠였나 그랬던 것 같다. 등교하면 뻔히 보이는 얼굴에 아츠시는 무난하게 지낸 날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들을 구분은 할 수는 있었지만, 아츠시는 비슷한 색의 후드티를 입은 사람만 봐도 그가 떠오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츠시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다. 그런 자신을 보며 토도마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혼자 가?”

“선약이 있어서.”

“에-. 누구? 여자?”


그 말에 아츠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려 토도마츠를 똑바로 봤다. 여전히 귀엽고 무해한 얼굴로 자신에게 비수를 꽂고 있었다. 예전의 일이 다 없었던 일 마냥 구는 게 짜증났다. 그 동안 자신이 너무 휘둘린 것이 문제였긴 하지만, 이렇게 잊을 때 쯤 다가와서 말을 하는 그는 정말 치밀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조금만 같이 있어주면 안 돼? 나 심심하단 말 야. 형 올 때 까지만. 응?”


어느 샌가 자신의 옆에 온 그가 자신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괜히 귀여운 목소리를 내기까지 하며 자신을 붙잡는 그를 보며 아츠시는 다시 생각했다. 그래. 마지막. 마지막이니까 조금 더 욕심내도 되겠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자신을 보며 토도마츠는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이던가. 아츠시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긴 기간 동안 변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여전히 설레어하는 자신을 탓하는 생각을 했다.


둘은 나란히 신발장에 기대 앉아 내리는 눈을 봤다. 꽤 많이 오고 있었다. 아츠시는 눈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유는 옆의 있는 사람 덕분이라 할 수 있겠지. 토도마츠는 아무런 말이 없이 그냥 앉아 발장난을 하고 있었다. 혼자 기다리는 것과 뭐가 다르지. 아츠시는 그를 쳐다만 봤다. 말을 걸어봤자 카라마츠의 얘기 밖에 더 하겠냐 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그를 이렇게 길게 보는 게 좋았다. 예전과 똑같은 만지면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여전히 큰 눈 뭉툭한 코 작은 입 하얀 피부 마른 몸, 겨울이 되면 입고 다니는 분홍색 후드. 토도마츠는 분홍색의 옷을 자주 입고, 신발도 그런 색이었다. 형제가 많아 섞이기 쉬워, 각자의 색을 정했다고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왜? 나 뭐 묻었어?”

“아니.”


멍하니 반대편을 보던 토도마츠가 불현듯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봤다. 시선이 맞는 순간 아츠시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토도마츠는 다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알겠지. 아직도 널 좋아하는 걸. 아츠시는 입술을 살짝 물었다. 아마 알고 있으니까 더 그러겠지. 놀리는 걸 좋아하니까. 사랑받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자신의 옆에 이렇게 잊을 만 하면 오는 거겠지. 그래 그는 치밀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혹여 그냥 생각이 없이 행동하는 게 아닐까라는 추측으로 사실은 다 알면서 자신은 항상 받아주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이기적인 행동으로라도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너를 기다리고 찾을 수 있어. 겨울 방학식. 아츠시에게 있어서는 매년 그를 잊고 살려고 하는 노력을 깨부숴주는 그런 날이었다. 최대한 그의 반 근처로 가지 않으려 하고, 복도에서 그가 보이는 것 같으면 돌아가고, 혹여 체육시간이 겹치면 아프다는 핑계로 수업을 듣지 않기도 했었다. 그 노력을 토도마츠는 단 하루의 짧은 얘기, 그것도 자신의 연인에 대한 얘기로 쓸데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그를 더 많이 볼 걸.


“졸업하고도, 연락할거지?”


토도마츠는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흔들었다. 언제 산걸까. 자신은 그의 번호도 모르고, 그도 모를 텐데. 예의상이겠지. 아츠시는 고개만 끄덕였다.


“자.”


토도마츠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어라? 아츠시는 멍청하게 눈만 깜빡였다. 그 표정에 토도마츠는 크게 웃었다.


“번호 줘야지-. 나 어제 샀거든. 이거.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산거야.”

“아. 응.”


그의 얘기를 들으며 아츠시는 자신이 그 때와 전혀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무엇에 머물러 있었을까. 넘겨받은 그의 핸드폰은 귀여운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분홍색 하트모양인 작은 고리가 달려있었다. 화면을 켜자 그와 카라마츠의 사진이 배경으로 되어 있었고, 번호를 두드리는 와중에 보이는 단축번호의 0번에는 하트가 잔뜩 붙여져 있었다. 후. 아츠시는 그 짧은 행동에도 보이는 그의 행복함에 조금은 개운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 자신은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그의 행복에 기뻐해야지. 번호를 입력하고는 그에게 다시 내밀었다.


“네 핸드폰은? 내 번호도 가져가야지.”

“아. 오늘은 안 들고 와서.”


그의 말에 잠깐 갈등을 했었지만, 이내 그만 두었다. 괜히 알아봤자, 추접하게 번호를 썼다 지웠다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왕 그의 행복을 축복해주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니, 제 3자 아니 거기서 더 멀리 떨어진 관계가 되고 싶었다. 후응. 자신의 말의 의도를 알겠는지 토도마츠는 핸드폰을 가져가 톡톡하고 자판을 눌러 자신의 번호를 저장했다. 어떻게 저장했을까. 아츠시. 정도려나. 그렇겠지. 그 정도의 사람 일 테니.


“자-. 이렇게 저장했어.”


힐끗힐끗 그의 핸드폰 화면을 보는 것을 눈치 챘는지 토도마츠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번호에 저장된 이름은 의외였다. 이름의 앞뒤로 하트모양의 문자가 찍혀있었다. 친구들을 원래 이렇게 저장하나. 아츠시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지만 조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 멍청하게도. 이 작은 것 하나에.


“귀엽지? 이름이 한자가 아니라 히라가나니까- 이런 문자를 붙이면 더 귀여울 것 같아서. 나도 이름에 한자가 안 들어갔으면 좀 더 귀엽게 쓸 텐데.”

“아. 뭐, 그래도 잘 쓰잖아?”


그의 별 의미 없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 자신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토도마츠는 귀여운 것에 꽤 집착이 심했다. 행동이나 글씨도 그랬고, 작은 제스처마저도 그런 편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카라마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지잉. 토도마츠의 핸드폰이 울렸다. 반색을 하며 확인을 하고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형 좀 있으면 끝난대.”

“잘됐네. 그럼 난 이제 갈게.”

“잠깐만. 조금만 더.”


그래도 삼십분은 더 있어야 돼-. 라는 뒷말에 아츠시는 엉거주춤 일어났다가 다시 앉아버렸다. 대화도 없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게 혼자 있는 거랑 뭐가 다르다고. 하지만 이럴 때라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가 좋기는 했다. 아츠시는 눈을 감았다. 지금의 감각을 기억하고 싶었다. 마지막이니까. 가만히 집중하고 있으면, 토도마츠의 숨소리나, 특유의 향기, 조금씩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머리를 신발장에 기댔다. 평소 같으면 더러워서 하지도 않았겠지만 지금 긴 긴장감에 지쳐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에게 좋은 마지막으로 보일 수 있을까.


“아츠시. 자?”

“아니.”


눈을 감은 채로 아츠시는 대답했다. 훅. 토도마츠의 향기가 좀 더 가까워졌다. 아츠시는 한 쪽 눈 만 떠 옆을 봤다.


“왜?”

“그냥-.”


양 무릎을 안은 채로 토도마츠는 자신을 올려다봤다. 방학식이라 일찍이 불을 끈 교정은 밖의 눈에서 반사되는 빛에 조금 어두웠다. 그 어두움 속에서도 토도마츠는 어쩐지 빛이 났다. 토도마츠는 슬쩍 손을 아츠시의 눈앞에 흔들었다. 그 손에 아츠시는 눈을 뜨고 그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토도마츠는 눈을 반만 감고 입을 열었다. 공기가 조금 섞인 집중하지 않으면 잘 안 들릴 정도의 말이었다. 마치 누가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듯이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히.


“아-. 이렇게 기다리기만 할 거면 너랑 사귀는 게 나았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을 아츠시는 기억하고 있다. 아까처럼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조금만 비슷한 온도의 공기가 흘러 들어오면 자연히 떠올랐다. 그 차가운 공기의 흐름도, 등과 머리에 느껴지는 신발장의 철제특유의 촉감도, 그 말을 하면서 슬쩍 자신의 손을 잡은 토도마츠의 손의 크기도, 그리고 처음 보는 다정한 웃음이 묻어난 그의 표정도. 그리고 미칠 듯이 뛰는 심장 소리도. 이 아름다운 잔인함을 더 뭐라고 적어야할까.


“농담이야. 아 시간됐다. 좀 있으면 형 오겠네.”


한 쪽 눈을 감으며 장난스럽게 혀를 내민 그를 보자 아츠시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그에게 인사도 없이 밖으로 나섰다. 손에 든 우산을 쓰지도 않고 눈을 맞아가면서 집으로 향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 그 생각뿐이지만, 머릿속은 그의 말이 맴돌았다. 손에는 그의 손의 촉감이 여전했고, 분노라고는 전혀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설렘으로 뛰는 심장과 아직까지도 또렷한 기억에 아츠시는 그 날, 그 먼 거리를 눈을 맞고 걸어와 된통 감기에 걸렸었다.


잊지 못했다. 자신이 이런 기억을 잊지 못하게 한 것은 토도마츠였다. 그의 1순위였던 카라마츠보다 그에게 더 도움이 되었다는 유일한 말이었으니까. 유일하게 그를 이길 수 있었던. 토도마츠의 행복을 가장 바랐던 자신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말이자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 절망적인.


아츠시는 물이 묻은 핸드폰의 화면을 닦았다. 하지만 자꾸 물이 맺혔다. 젖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것이겠지. 그는 조용히 화면만을 닦을 뿐이었다. 네가 다시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갈 수밖에 없지.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경치가 좋다며 옆에 누워 있는, 이제는 다시 볼 일이 없는 그녀가 예약한 고층의 호텔은 창이 컸다. 침대의 바로 옆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더 빛내주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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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t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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