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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토도] 이사


"읏차"


토도마츠는 창고방에서 형제만큼이나 많은 상자들을 옮기고 있었다. 여섯 중에 하나. 같이 사는 부모까지 합친다면 토도마츠는 집에서 여덟 중에 하나인 작은 존재였지만 짐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가 유난히 물건에 미련이 많아 버리는 걸 잘 못하는 것도 한 몫했다. 좁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적은 예산으로 몇 개의 집을 찾아보고 나서는 꽤 넓다고 생각하게 되는 창고방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눕을 자리를 제외하고는 박스와 책같은 짐들이 쌓여있었다. 처음에는 항상 이 집에 자신이 있다는 전제하에 아무런 생각 없이 뒀기에 정리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 토도마츠는 장갑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4월. 꽃이 슬슬 피어나는 시기. 토도마츠는 조금 오래된 말로 표현하자면 새로운 시작을 하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성적으로 시작되던 잔소리는 취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사 년. 취직은 됐으니 생활비라도 줄이게 독립이라도 하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년퇴직을 바라보는 아버지. 마트에서 파트타임 알바를 하는 어머니는 여덟의 생활비만으로도 버거울만큼 늙어있었다. 물론 그걸 제대로 신경을 쓰는 아들은 이 집에 없었다. 지금 그 집에서 독립을 준비하는 토도마츠마저도.


쿵.


자신의 이름이 적힌 상자를 토도마츠는 내려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개의 상자가 창고에서 나왔다. 그 중 네 개는 뭐가 들었는지 가늠도 하지 못했다. 아마 이 상자에 이름을 적은 어머니가 알고 있겠지. 토도마츠는 다섯 개의 꽤 크고 작은 상자를 복도로 옮기고 엉망이 된 창고를 다시 치우기 시작했다. 


토도마츠의 독립은 부모를 위해서라던가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따위의 큰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모든 삶이 그랬듯 단지 그러고 싶었다. 이제와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심 아닌 변명으로 얼버무렸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그러고 싶었다. 꽃이 피고, 추운 겨울은 지나갔으니까. 토도마츠는 항상 하고 싶은 걸 우선 생각하고 그 이후에 이유를 정하고는 했다. 그 이유는 그에게는 딱히 필요없었지만 쓸데없이 관심이 많은 형제들에게 선언같은 설득을 할 때 필요했기에 습관처럼 찾고는 했다. 겁이 많아 혼자서는 잘 시작하지 않지만 같이 할 사람을 구하면 이제는 더 막을 것이 없다는 듯 준비를 착착 해나가곤 했다. 지금처럼.


그의 결정에 힘을 실어준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자랑거리 중 유일히 사람인 아츠시였다. 자신에 대한 평가에는 후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토도마츠가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무시해가며 자랑할만큼 아츠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는 평생 동성간의 사랑이라고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그가 아츠시와 사귀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무언가는 사실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아츠시는 그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으니까.


토도마츠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냥 그를 자랑하고 싶었고, 그런 그와 친해지고 싶었고, 항상 함께했던 모든 만남이 사실 아츠시가 그에게 연심을 품고 했던 것임에도 만나고 싶었기에 만났다. 그에게 고백을 받았던 날도 처음 보는 수줍어하는 표정이 마음에 들었기에 허락을 했었고, 처음 입을 맞출 때도 허리를 안아주던 손이 좋아서 그 뒤의 것도 막지 않았다. 아츠시는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래서 토도마츠는 더더욱 하고싶은 대로 했다. 그와 더 오래 있고 싶으니까. 형제들에게 자신의 연인을 밝히지 않는 이대로 그를 자신의 장소에 초대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토도마츠는 바닥을 가득 채웠던 상자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꽤 큰 자신의 짐을 빼냈다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크게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 나지 않았다. 최근 자신에게 매정하다며 어떻게 그렇게 떠나냐고 투정을 부리는 몸만 커버린 형들도 후련하다고 말을 하지만 걱정을 하는 어머니도 얘기를 한 날 손을 꼭 잡고 우리는 항상 여기에 있겠다며 어릴 때나 들었던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하던 아버지도 아마 금방 그의 빈자리가 익숙해질 것이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닌 거니까. 토도마츠는 드러난 바닥에 쌓인 먼지를 쓸었다. 어머니가 창고 청소를 몇 번이고 하라고 했었지만 듣지도 않았던 걸 후회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앞으로 계속 해야할 일을 토도마츠는 서툴게 시작했다. 바닥의 먼지가 잘 쓸리지 않아 새해대청소때나 잡아보는 걸레로 닦았다. 묵은 때는 잘 지워지지 않았지만 힘을 실어 닦으니 조금씩 원래의 색을 띄기 시작했다. 


후. 토도마츠는 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의 노동에 찌뿌둥한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깔끔해진 창고의 문을 닫았다. 복도에 놓여진 박스의 앞에 털썩 앉아 박스 위의 먼지도 훔쳤다. 그러자 박스 위에 적힌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토도마츠 교복, 토도마츠 옷, 토도마츠 일기, 토도마츠 장난감. 어릴 때의 자신이 받아온 사랑들이 적힌 글씨를 몇 번이고 훔쳤다. 토도마츠는 먼지때문이라 생각하며 괜히 기침을 했다. 네 개의 박스를 닦고나서야 위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작은 분홍색 박스를 집었다. 먼지가 거의 묻지 않은 자신의 글씨로 이름만 적힌 작은 박스에는 뭐가 들었는 지, 언제 어떤 마음으로 넣었는 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 안에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받았지만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이 담겨있었다. 아츠시의 도움으로 겨우 구한, 창고보다도 더 작은 방에는 이 많은 사랑이 들어갈 수 없는 걸 토도마츠는 알고 있다. 하지만 들고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더 이상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 자신이 아직은 어색했다. 나중에는 이유를 생각하는 게 어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토도마츠는 꼭 이것들을 챙겨가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그런 날이 오지 않아도.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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