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아츠토도] 방과후

8월서코, 9월통온에 나올 예정입니다




표지샘플 크라프트지로 나옴다 
표지샘플 크라프트지로 나옴다 

A5 24p/ 4000원/ 

선입금폼 >>naver.me/5mTwQwGR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라는 건 생각도 하지 못한 곳에서 생겨나고, 예상도 하지 못한 사건으로 인해 알 수 없는 사이로 발전하곤 한다. 이런 당연하다 못해 아무도 말 하지 않을 정도가 된 당연한 이치를 마츠노 토도마츠는 고등학교 1학년 봄, 만개했던 벚꽃이 져가는 풍경이 창문에 그려진 교실 안에서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 날은. 평소랑 같은 날이라고 자부한다. 평소처럼 형제들과 함께 등교를 했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 조회시간 전 까지 친구들과 시덥잖은 얘기로 시간을 때웠고, 수업 시간은 여전히 지루했고, 어머니가 싸주신 점심 도시락은 항상 먹는 맛이었다. 늘 있는 일상이었다. 반의 풍경도 같았다. 뒷자리의 친구는 토도마츠를 방패삼아 수업시간에 졸았고, 결국 들켰고 혼이 났고 그런 그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리고 토도마츠에게 당연한 이치를 알려준 반장인 아츠시는 무슨 수업에든 빛이 났다. 평소와 똑같이. 앞에 나와 푸는 수학 문제도 완벽했고, 지목당해 영어 교과서를 읽는 모습도 완벽했다. 멋지다라는 옆 자리 여자아이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서 괜히 아츠시를 보며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구긴 토도마츠를 보며 웃던 미소마저도.

그래 평소와 같다. 토도마츠의 긴장된 마음을 제외한다면.


그 날에서 조금 전으로 거슬러간다. 토도마츠는 반장이라 수업이 끝나고도 선생님의 심부름을 한다는 이유로 늦는 아츠시를 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중학생 때처럼 집이 같은 방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꽤 오래 같은 길을 걷지도 않는다. 학교에서 오 분정도 걸으면 나오는 횡단보도를 아츠시는 건너고 자신은 건너지 않은 채로 헤어진다. 하지만 토도마츠는 그 오 분을 위해 아츠시를 기다렸다. 이유는 뭐, 꽤 오랜 우정의 힘이라고 말하자. 사실 토도마츠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뭐. 숨 쉬는 것처럼 그와 함께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가끔 의문을 품고 묻는 사람이 있어, 그들을 설득할만한,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중학교 동창이니까. 꽤 멀었던 중학교를 다닐 때. 같이 전철로 이십분 정도 가고, 역에서 내려 다시 십 분정도 걸어야 되는 하굣길에 익숙해져서, 그래서, 그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이 이유도 다시 말하자면 그와 함께하는 하굣길이 당연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와 함께 있어야한다.

그래야한다고 토도마츠는 생각한다. 그래야만 관계가 지속이 되는 걸 알고 있으니까.

청소가 끝난 빈 교실에서 토도마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사준다는 구세대 부모를 설득하지 못한 자신을 속으로 힐난하고, 중학교 때부터 매년 신제품으로 핸드폰을 바꾸는 아츠시를 질투하면서. 아츠시의 스마트 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빈 교실과 마찬가지로 복도도 비어있어 조용했다. 교실에 울리는 소리라고는 조금 열린 창문에서 들리는 바람소리나 멀리 운동장에서 들리는 육상부의 신호들이 전부였다 중학교 때는 딱히 그의 핸드폰으로 갖고 놀 것이 없었다. 스마트폰이 아닌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전화나 메일, 사진, 혹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게임정도였다. 아츠시의 메일함은 굳게 잠겨있었고, 비밀번호를 알고는 있었기에 열어 볼 수 있었고. 아츠시도 딱히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토도마츠는 열지 않았다. 마지막 예의라고 해야 될까. 그래서 가끔 자신의 사진을 찍거나, 그냥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스도쿠를 하곤 했었다.

스도쿠는 굉장히 단순한 시스템으로, 시간 내에 풀면 시간이 기록되었다. 머리가 좋지 않아 잘 하지는 못했지만, 자신과 비슷한 시간대에 아츠시가 풀어놓은 기록을 보는 게 좋았다. 그의 신기록을 자신이 깨고 그 이름에 토도마츠라고 적어 놓는 게 좋았다. 다음 날에 보면 아츠시가 다시 간발의 차이로 신기록을 세워놓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이상하게도 매년 바뀌는 아츠시의 핸드폰에는 항상 스도쿠가 있었다. 같은 회사의 모델을 써서 그런 거겠지. 라고 토도마츠는 생각한다. 뭐, 그가 그렇게 스도쿠를 좋아한다는 느낌은 받지 않으니까.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아츠시의 핸드폰은 스마트 폰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스도쿠는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계를 처음 접한 토도마츠에게 그 게임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가끔 들어가 아츠시의 기록을 보는 정도. 수학도 영어도 잘하는 그였지만 이상하게 스도쿠 기록은 좋지 않았다. 그게 또 토도마츠에게는 귀엽게 생각되기도 했다.

아츠시는 완벽하게 보이는 것에 비해 가끔 서툰 것들이 있다. 이런 스도쿠라던가, 만화주인공의 이름을 외우는 것, 필통 안을 정리하는 거라던가, 우산을 깔끔하게 말지 못 하는 것 같은 자질구레하지만 토도마츠가 그보다는 잘하는-스도쿠를 제외하고-행동이었다. 토도마츠는 그런 아츠시를 보는 걸 좋아했다. 아츠시의 조금 어설프게 말린 우산도, 지저분한 필통도 자신이 도와줄 수 있었지만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런 게 좀 더 뭐랄까. 귀엽다고 생각한다. 너무 완벽하면 매력이 없잖아.라는 핑계도 있었다.

아 또 서툰 게 있었다. 단 것을 잘 먹지 못하는 것. 이건 서툴다고 할 수는 없지만, 토도마츠는 간혹 아츠시의 좋은 점을 그렇게 말하곤 한다. 단 것을 먹고 짓는 표정이 묘하게 서툴었다. 그렇게 거절은 잘하면서 이상하게 싫다는 표정은 짓지 못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단 것을 싫어하면서 토도마츠가 먹으러가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한다. 그 표정 또한 귀여웠다.

남의 말에는 거절을 잘하면서도, 토도마츠의 말에는 거절을 잘 하지 않는 모습 또한, 서툴었다.

“아.”

문득 토도마츠는 그 표정이 보고 싶어졌다. 그럼 그가 오면, 케이크라도 먹으러 갈까싶어, 인터넷으로 근처 카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스마트 폰이라는 건 진짜 편하단 말이지. 그런 당연한 생각을 하면서, 외양이 마음에 드는 카페의 디저트 메뉴를 살피기 시작했다. 봄이라 그런지 딸기로 범벅이 된 사진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토도마츠는 그 빨간 과일이 좋았다. 물면 부드럽게 으스러지며 입 안에 가득 메우는 향과 과즙을 좋아했다. 그리고 밑으로 갈수록 옅어지는 단 맛까지도. 생크림이 잔뜩 얹어진 케잌에 올라간 딸기는 생크림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과 어우러져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흰색과 빨간색의 아름다운 조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토도마츠는 빠져들 듯 화려한 사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띵동.

토도마츠는 사진을 멍하니 보다 핸드폰을 울리는 소리에 움찔했다. 사진을 가리고 뜬 것은 라인알람이었다.

‘아츠시군 방과 후 교실에서 기다릴게. 할 말이 있어.’

굳이 누르지 않아도 보이는 내용에 토도마츠는 미간을 찌푸렸다. 보낸 사람은 같은 반의 미츠키였다. 그 짧은 라인으로 토도마츠는 ‘할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반의 부반장인 그녀가 반장인 아츠시에게 마음이 있는 건 반 전부가 알고 있다. 담임선생님마저도 둘을 부부라고 부를 정도니까. 촌스러운 별명이라고 토도마츠는 싫어하지만.

드디어 하는 건가 고백.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리지. 아직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토도마츠는 라인창이 사라질 때까지, 응시했다.

나는 아츠시를 안지 몇 년이 되었는데.

토도마츠는 고개를 들어 교실을 둘러봤다. 빈 책걸상이 보였다. 조금 답답한 마음에 일어나 창가로 가, 조금 열린 창문을 다 열었다. 봄바람과 함께 벚꽃이 교실에 들어왔다. 사층이라 그런지 꽤 센 바람이었다. 토도마츠는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눈을 반 쯤 감았다.

‘아츠시는 받을까. 그 고백.’

토도마츠는 창가에 기대 곱게 핀 벚꽃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조금은 기운 햇빛을 받는 벚꽃은 빛나고 있었다. 고백이라.

아츠시는 고백을 중학교부터 질리게도 받아왔다. 자신이 아는 것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으니, 모르는 것을 합치면 자신의 다섯 명의 쌍둥이 형들의 손가락을 합쳐도 셀 수 없을 지도. 물론 상대는 다 달랐다. 심지어 상대의 나잇대도 달랐다. 학교의 선배. 옆 학교의 후배. 유난히 키가 큰 그를 대학생으로 알았는지 고백했던 대학교 근처의 카페 알바 누나도 있었고, 뭐, 물론 같은 반의 여자아이들도 많았다.

다들 그를 멀리서 지켜보다가 고백을 하고는 했다. 아츠시는 다 알면서도, 누가 따라다닌다고 귀찮다고 자신에게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그걸 저지하지는 않았다. 단지 고백을 받으면 놀라는 척 이렇게 갑작스럽게는 받지 못한다고 거절을 했었다.

하지만 미츠키처럼 친구로, 가끔은 같은 학생회의 동료로, 어찌되었든 가깝게 다가와 조금 기간을 두고 그와 얼굴을 익힌 후, 고백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아츠시는 이상하게 그런 관계의 여자인 친구는 없었다. 남자인 친구는 많은 편이면서. 그런 아츠시와 가깝게 된 유일한 여자인 미츠키는 얼굴도 귀엽고, 성격도 좋았다. 아마 그를 마음에 둔 남자들도 몇 있으리라. 그녀가 아츠시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아츠시는 편안해보였다. 뭐 그러니까 친구처럼 편안해 보였다고. 친구처럼.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관계는 흔하다. 여기저기서 보인다. 우정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랑이더라. 라는 진부한 얘기들도 널려있으니까. 토도마츠는 우울해져서 책상에 놓여있는 아츠시의 스마트 폰을 들고 다시 창가로 왔다. 그리고는 스마트 폰을 쥔 손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이걸 그냥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아츠시의 가방을 들고 교무실로 가는 거야. 아츠시에게는 실수였다고 사과를 하고 아까 본 디저트카페에서 같이 딸기가 올라간 생크림 케잌을 사주는 걸로 퉁치고 싶었다. 그럼 미츠키는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다가 거절을 담은 무시라는 걸 알고 마음이 뜨지 않을까.

“뭐하냐. 나.”

토도마츠는 멍청한 자신을 마주한 것에 한숨을 푹 쉬고는 내밀었던 손을 다시 가까이해 아츠시의 스마트 폰의 뒷면을 봤다. 벚꽃이 그려져 있는 폰 케이스. 자신이 골라준 것이다. 뭔가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는 아츠시였기에, 항상 그의 폰 케이스나 스트랩을 골라주는 건 토도마츠였다. 아마 미츠키랑 사귀게 되면 그녀가 골라준 케이스가 끼워진 스마트 폰을 들고, 멍청하게 생긴 마스코트를 커플로 맞춘 스트랩을 끼우고 다니겠지.

쯧. 토도마츠는 혀를 찼다. 리얼충 타도! 커플 타도! 하는 형제들을 한심하게 봤지만 지금만큼은 좀 동감하는 바다.

드르륵.

조용한 교실안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토도마츠는 나쁜 짓이라도 한 것 마냥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열린 앞문에는 미츠키가 서있었다. 아츠시였으면 좋았을 텐데. 토도마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그녀에게 웃으며 물었다.

“미츠키. 아직 집에 안 갔어?”

토도마츠의 목소리에 교실에 들어선 그녀는 누군가 있다는 것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학생회에 일이 있어서….”

웃기고 있네. 오늘은 학생회의 일이라곤 없다. 그렇기에 아츠시가 담임선생님의 일을 도우러간 거고. 토도마츠는 속으로 비웃으며 그녀를 놀리 듯, 말을 내뱉었다.

“그래? 고생이 많네. 아츠시도 그거 때문에 늦는 거야?”

“…응.”

아츠시라는 이름에 움찔하는 그녀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미츠키는 평소에 꽤 호탕한 편이다. 자신이 아츠시를 좋아하는 것을 솔직히 말할 만큼. 물론 본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오늘은 잔뜩 긴장하고 크게 다짐한 표정이 조금은 달라보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귀여워진다고들 하지. 그게 이런 거던가. 그렇게 자신감 있던 사람이 안절부절하고 긴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귀엽다고.

어이없어 정말.

미츠키의 사랑이 향하는 곳이 자신에게 기분 나쁜 만큼, 토도마츠는 미츠키의 그 모습이 싫었다. 그만큼 진심인 것 같잖아. 그렇게까지 귀여우면 아츠시도 어쩔 수 없이 받아줄지도 모르는데.

드르륵. 미츠키는 뒤돌아 교실 문을 닫았다. 조용한 교실에는 바람소리만 가득했다. 평소 같으면 재잘거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미츠키가 가만히 있으니 토도마츠는 괜한 짜증이 일었다.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집에 가는 거 아니야?”

“아…. 그게.”

“응?”

뭔가 말을 하려 입을 떼려다 마는 미츠키를 보며 토도마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미츠키가 부끄러워하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나한테 할 말 있어?”

“저…마츠노군, 잠깐 나가줄 수 있어?”

“내가 왜?”

토도마츠는 아츠시의 핸드폰을 보이지 않게 주머니에 넣고는, 손을 뒤로 숨기고 웃으며 미츠키에게 다가갔다. 반에서 평균 키인 토도마츠는 반에서 조금 작은 편인 미츠키의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녀에게 가까이 서자, 조금 달콤한 향이 코에 닿았다. 향수라도 뿌린 건가. 아츠시는 이런 향 안 좋아하는데.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하지. 하지만 뿌린 적은 없다. 그야 뭐 아츠시가 싫어하니까.

토도마츠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미츠키의 얼굴에, 고개숙여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하며 다시 물었다. 불이 꺼진 교실이라 어두워서 몰랐는데 가까이서 본 미츠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왜? 여기 있으면 안 돼?”

토도마츠의 짖궃은 장난에 평소 같으면 호탕한 말로 넘어갈 미츠키지만 입술을 꼭 깨문 채로 가만히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떨고 있었다. 긴장되겠지. 지금 미츠키의 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을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말하지 못한 채로 그녀를 보기만 했다. 토도마츠의 마지막 배려였다. 응원의 말이라던가, 적어도 아츠시는 그런 향 싫어하는 데라는 조롱 섞인 힌트 따위 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자신은 미츠키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 부부라는 호칭을 뺀다면 꽤 좋아했다. 그녀가 아마 아츠시가 아닌 다른 상대에게 고백을 한다면, 이렇게 귀엽게 행동한다면 기꺼이 나서서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왜 이렇게 갑자기 그녀의 모든 것이 싫어졌는지.

토도마츠는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떨고 있는 미츠키를 보며 깨달았다. 미츠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다 아는 것도, 꽤 호감인 그녀가 갑자기 싫어진 것도, 유치하게 아츠시의 스마트 폰을 버리려고 한 것도. 아니 그 전부터, 별 이유 없이 그를 기다린 것도, 아츠시가 받은 고백에 괜히 신경을 쓰는 것도, 아츠시의 귀여운 모습을 그대로 두는 것도. 전부 다.

기분 나빠. 토도마츠는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진심에 마주했다.


나는 아츠시를 좋아하고 있어.

토도마츠는 짜증이 일었다. 멍청하게도 이제야, 어쩌면 아츠시가 허락할 고백을 받기 전 즈음에야 자신의 마음을 알았다. 원래 늦은 편이라지만, 이걸. 이제야. 아니, 그래 숨기지 말고 말해보자. 사실 알고 있긴 했다. 당연하지. 자신과 아츠시의 관계를 조금만 더 관심 있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다른 친구들과 아츠시를 전혀 다르게 대했으니까.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쓰는 것부터, 남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는 자신이 아츠시의 작은 버릇들도 알고 있는 것까지.

하지만 적어도 아츠시에게는 숨기려고 했다. 그래 그걸 위해서 자신의 진심을 외면했다. 자신의 연기는 서툴었고, 아츠시는 눈치가 빨랐다. 그래서 아츠시에 대해서는 거의 알고 있더라도-예를 들어 핸드폰의 비밀번호라던가-모른 척을 했었다. 그냥 보통 친구들이 아는 만큼만 아는 척을 했고, 거기서 그냥 아츠시가 조금 성격이 나쁜 것 정도를 이해하는 걸로만. 조심스러웠다.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야 뭐. 좀 그렇잖아. 아츠시가 나와 다른 감정으로 우정으로 날 좋아하고 있으면 가까이 있기 곤란하니까. 그리고 또, 거절을 당하면 상처받을 것 같고. 아츠시는 나한테 그렇게 감정이 없는 거 같고. 나는 지는 싸움은 하지 않으니까. 변명 같은 소리를 토도마츠는 속으로 내뱉었다.

겁이 많은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라는 당연한 이치를 외면하고 싶었다.

나는 겁이 많은 게 아니야. 단지.

토도마츠는 미츠키를 내려다봤다. 귀여운 행동은 이제 보니 조금 꼴불견일 정도였다. 준비를 덜하고 무대에 서는 배우같은 느낌일까.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시작하려니까 그렇지. 토도마츠는 그렇게 자신의 안에 있는 작은 불안감을 떨치려했다. 분명 아츠시는 거절할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교실 안에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펄럭이는 커튼소리와 흩날리는 벚꽃. 아무도 없는 조금 어두운 교실. 그리고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같은 반의 남녀. 청춘의 한 페이지를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 이런 걸 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의 남자주인공의 속은 그냥 아침드라마의 질투뿐이지만.


드르륵

미츠키가 닫았던 교실의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미츠키도, 토도마츠도 시선이 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 서있는 사람은 그 둘이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미츠키는 멍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아츠시군….”

“많이 기다렸지 마츠노?”

자신을 부르는 미츠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아츠시는 웃으며 마주 선 둘에게 다가갔다. 아츠시가 가까이 오자 미츠키의 몸은 보일만큼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토도마츠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안에 있는 작은 불안감보다도, 설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외면하고 있던,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미츠키를 질투하게 되는 순간. 곧바로 보는 아츠시의 얼굴은 어쩐지 그렇게 오래 봐왔는데도 어색했다.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토도마츠는 몇 년간, 거리를 두었다. 혹여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마음에 대한 말이라도 할까봐. 그래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미츠키처럼 꼴불견으로 떨고 있을까봐. 근데 지금. 어쩐지 자신이 미츠키보다도 더 꼴불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도마츠는 아츠시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 한 채로 애꿎은 미츠키만 쳐다봤다.

여전히 용기를 내는 건 토도마츠가 아닌 미츠키였다. 미츠키는 다가오는 아츠시를 보며 다시 그를 불렀다.

“저기…. 아츠시군 할…말이 있는데,”

“가자 마츠노.”

작고 떨리다 못해 사라질 만큼의 목소리를 겨우 내는 미츠키를 여전히 토도마츠는 보고 있었다. 아츠시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너무 그를 보지 않으면 이상할까싶어, 큰 다짐을 하고는. 겨우 고개를 들어 아츠시를 봤다. 조금 미안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츠시의 시선은 바로 옆에서 자신을 부른 그녀에게 닿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이 교실에는 둘 뿐이고, 자신과 가까이에 미츠키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도 만무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었던 바람은 언젠가 멎어, 펄럭이던 커튼도 조용했고, 바람소리조차 없었다. 일방적인 무시라도 하는 건가. 토도마츠는 아츠시를 빤히 봤다. 아츠시는 그에게 웃어보였다. 표정을 보니 그의 기분이 나쁜 거 같지는 않아보였다. 물론 아츠시는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라, 자신이 싫어하는 상대는 곧잘 무시하곤 한다. 허나 아츠시와 미츠키는 사이가 좋은 편이고, 아마 여자아이들 중에서는 가장 아츠시와 사이가 좋을 거고-적어도 토도마츠가 아는 선에서는- 그녀의 말을 무시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렇게 바로 옆에서 떨고 있는데다가, 힐끗 보기만 해도 그녀가 중요한 할 말이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왜? 

 토도마츠는 혼란스러웠다. 아츠시의 표정에서 다른 감정은 읽을 수가 없었다. 평소와 같았다. 그렇다고, 왜 그녀를 무시하냐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미츠키는 그를 다시 부를 자신이 없는 듯, 주저하기 시작했다. 토도마츠는 그제야 자신과 미츠키가 꽤 가까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 그래. 방금까지 자신과 미츠키는 나란히 서서 마주본 채로,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아츠시는 미츠키가 자신을 기다리는 줄 모르고 있겠지. 이런 게, 지금, 아츠시가 미츠키를 무시하는 이유에 포함이라도 된다면.

어쩌면.

토도마츠는 머리에 뭔가의 기대가 생겼다. 말 그대로 기대감이다. 일종 망상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냥 몇 년 동안이나 외면했던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 만큼 토도마츠의 모든 생각은 그런 방향으로 밖에 향하지 않았다. 아츠시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츠시도 나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미츠키가 얘기는 하게 해줘야 할 것 같았다. 토도마츠는 그녀의 진심이 담긴 고백을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도구로 쓰려는 자신을 마주했지만 상관없다. 뭐가 되었든, 그녀도 지금 이걸 바랄 테니까. 전하고 싶을 거 아냐. 이기적이든 뭐든 상관없어. 먼저 임자 있는 사람을 건들인 게 잘못이지.

토도마츠는 시선을 옮겨 다정하게 미츠키를 보고 웃고는 아츠시에게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 그것보다, 미츠키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토도마츠의 말에 흠칫한 미츠키는 그를 올려다봤다. 약간 눈물이 맺힌 것도 같았다. 불안에 떠는 모습이. 참 이런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토도마츠의 눈에는 조금 있으면 잡아먹힐 작은 초식동물 같았다. 토도마츠는 힘내라는 의미를 담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보험이었다. 혹여 아츠시가 미츠키의 고백을 받으면-토도마츠가 보기에도 확률은 낮았지만- 그녀에게 잘 보여야하니까.

“나는 밖에 있을게. 끝나면 말해.”

“잠깐.”

토도마츠가 발을 옮기려는 순간, 아츠시의 낮은 목소리가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리고는 토도마츠의 팔을 잡아 자신의 옆으로 끌었다. 뭐야. 토도마츠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하려다 말았다. 이런 상황에선 가만히 있어야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양 눈을 크게 뜨고. 막연히 아츠시를 쳐다봤다. 아츠시는 그제야 미츠키를 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마츠노도 같이 있어도 돼?”

허락을 구하는 말이지만. 목소리는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미츠키가 싫다는 의사라도 보인다면 그 뒤의 얘기는 듣지 않을 듯한. 그런. 위압감이 풍겨왔다.

아.

토도마츠는 연기를 하던 표정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웃는 모습을 미츠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들켰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그녀에게 딱히 잘 보여야할 이유는 없어진 것 같지만, 뭐. 너무 즐거워하는 승자의 모습은 좀 싫잖아? 비웃는 거 같고.

토도마츠와 대조되게, 미츠키의 표정은 조금 굳었다.

“…아, 아니야.”

“그럼 괜찮지?”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미츠키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미 그녀도 짐작하고 있을 대답을 위해 입을 열었다. 여전히 그녀는 용기가 있었다. 단지 자신의 용기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기 좋게 꾸몄을 뿐이다.

“좋아해 아츠시군. 나와 사귀어 줄래?”

떨리는 목소리. 흩날리는 벚꽃, 그리고 전하는 마음까지. 청춘의 한 페이지네. 토도마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미츠키의 표정을 보고 나면 앞으로도 그녀와 자주 마주쳐야 할 텐데 자꾸 그 표정이 생각날 것만 같았다. 아마 가장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겠지. 그리고 조금 있으면 가장 불쌍한 표정을.

토도마츠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아츠시가 혹여 이 고백을 받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은 없었다. 단지 그의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했다. 이런식으로 나란히 그를 향한 남의 고백을 들은 적은 없다.

자신이 모르는 아츠시의 모습이니까. 기억하고 싶었다. 토도마츠는 힐끗 아츠시를 봤지만 고개를 숙인채로는 자신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아츠시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미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토도마츠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알 수 있었다. 토도마츠는 아츠시의 말이 다시 한 번 울렸다.

좋아하는 사람.

아츠시에게 들은 기억이 없다. 그와 만나면서 한 번도. 아츠시는 고백을 거절할 때는 항상 그럴 마음이 없다. 혹은 갑작스러워서 정할 수가 없다. 라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이런 식의 대답은 처음이었다.

하아. 토도마츠는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미츠키는 담담하게 알겠다는 말과 함께 교실을 나갔고, 아츠시는 다시 평소의 목소리로 토도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 오래 기다리게 했네. 가자.”

토도마츠는 고개를 숙인 채로 끄덕일 뿐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아까 봤던 딸기 케이크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조금. 생각하고 싶었다. 아츠시가 잡았던 팔을 놓았다. 그 부분이 조금 뜨거워서 살짝 손으로 쓸어봤다.







217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