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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쵸로] From Y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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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Yours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쵸로마츠는 멈출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뛴 적은 오랜만이다. 얼마만이지라는 기억을 더듬어 갈 체력으로 더 빠르게 발을 굴리는 그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어릴 때가 기억났다.

과일장수가 쫓아왔고,

“헉, 헉.”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뛰었던 기억.

작은 바지주머니에 사과를 하나씩 넣고 뛰었었다. 그 덜렁이는 느낌이 분명 그의 손을 잡는 것보다 더 크게 느껴졌을 텐데도, 자신의 손에 딱 맞는 그 손을 잡고 있던 감촉이 더 뚜렷했다. 쵸로마츠는 아무것도 없는 빈손을 꽉 쥐었다.

무언가를 피해 도망친 적이 언제던가. 한창 장난을 치던 어릴 때를 제외하면 최근에는 없었던 것만 같다. 그야 당연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쫓는 이유는 자신이 그 누군가의 소중한 것을 들고 갔다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뭔가 보상을 줘야할 행동을 하지 않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쵸로마츠가 지금 달리고 있는 이유는 그 두 가지 전부였고, 자신을 쫓고 있는 상대는.

자신이 평생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아니 그럴 생각도 하지 않은 상대다.

쵸로마츠는 뛰고 있다. 어릴 때 훔쳤던 사과보다, 어머니가 숨겨놓은 금품들보다 더 소중한 것을 자신은 훔친 것이다. 그야 당연했다. 과일장수에게 있어, 사과는 그가 들고 간 것을 제외해도 더 있었고, 어머니의 돈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들고 도망치는 것은.

오소마츠에게 있어서는 쵸로마츠는.

나는.

하나 뿐이다.


-


“쵸로마츠?”

카라마츠는 반 년 만에 보는 형제의 얼굴에 눈을 크게 떴다. 집에는 자신을 제외한 남은 세 명의 동생들이 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자신의 동생은 반 년 전, 자신이 다른 동생들과 일을 그만둔 후에, 오소마츠와 독립을 한 쵸로마츠였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관계가 조금 특별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쵸로마츠를 향한 오소마츠의 애정과 그 방식이 얼마나 더 특별한지도. 그리고 그의 애정이 쵸로마츠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걸 만든 건 쵸로마츠였지만, 혹여 그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것만 같아, 오소마츠를 막으려했지만, 자신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은 그를 어찌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항상 동생들을 위하고, 그들을 위해 뭐든지 하려 했던 자신이지만, 제대로 하지 못한. 어찌보면 인생의 오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를 마주하자 카라마츠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숨겨버린 잘못을 다시 꺼낸 느낌.

그들의 독립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보낸 이유는, 그래도 쵸로마츠가 행복하다면, 그렇다면 나는 괜찮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신만의 정신승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사실이었다. 오소마츠의 애정이 각별한 만큼, 쵸로마츠도 그 감정에 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아마 그는 모든 것을 알고도 오소마츠의 옆에 있으리라. 그렇게 카라마츠는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을 마주한 쵸로마츠가 곧바로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는.

카라마츠는 조심스레 현관의 문을 닫고는, 집 앞에 있는 벤치로 그를 인도했다. 우는 그를 옆에 두고, 그가 멈출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쵸로마츠의 히끅이는 소리는 새벽의 풀벌레 소리와 섞여 더 비참하게 들렸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옆에서 우는 쵸로마츠를 보며 이상하게도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니 이상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쵸로마츠의 지금의 모든 감정이 존재하는 이유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지금부터 몇 년 전인지, 몇 살인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 시기였다. 단지 그 때의 자신은 아직 그를 ‘형’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고, 왁자지껄한 방의 문틈에서 조금 새어나온 빛이 어두운 복도에 있는 자신과 오소마츠를 비추고 있었다. 그 작은 빛을 받는 자신이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의 주인공같다는 생각을 했었고, 오소마츠가 비밀이라며 내미는 손가락이 그답지 않게 조금 떨리는 게 보였다. 그래서 카라마츠는 다정한 형제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 그 손가락을 잡고 태평한 척하는 목소리에 대답했다.

‘말하지 말기-. 약속-.’

‘좋다.’

만약 거기서 자신이 좋다는 말을 하지 않고, 이미 눈치 챈 둘의 관계를 형제들에게, 아니 부모에게 마저도 알렸으면 어땠을까. 토도마츠가 잠을 못 잔다며, 오소마츠와 얘기를 해달라는 건, 그냥 그를 떠보기 위한 핑계였을 뿐이다. 자신보다 더 눈치가 빠른 토도마츠가 그 소리를 들었다면 분명 알았을 거다. 카라마츠가 굳이 그걸 오소마츠에게 거짓말까지 해서 물어본 것은 확인과 그리고 약간의 경고였을 것이다.

다른 형제에게 이런 관계를 알린다면.

아니 남에게라도.

어떻게 될 것인지.

그러니 적어도 형제들 앞에서는 자제해달라는 의미의 경고.

카라마츠는 점차 커지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조금 있으면 여름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쵸로마츠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이제 그 소리는 처량하다 못 해,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들렸다.

뭐, 그 둘이 사랑을 하든, 뭘 하든 그는 딱히 상관하지 않았다. 상관할 이유조차 없었다. 오소마츠를 막을 사람은 쵸로마츠 뿐이라는 걸 모든 형제들은 알고 있었다. 물론 다른 동생들은 자신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하지만, 글쎄. 카라마츠가 막을 수 있는 건 그에 비해 조금 힘이 더 세, 겉으로만, 물리적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반 년 전처럼 어쩔 수 없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사랑은 물리적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지. 이런 핑계로 자신은 도망쳤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카라마츠는 사랑의 힘의 무한함을 믿는다. 사랑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지만, 그가 연기해 온 수 많은 대본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랑을 하면 갑자기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한 평생 보이지도 않다가, 사랑을 시작하면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하나 나오고는 했다. 마치. 사랑이 그 주인공의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인생의 모든 운을, 기회를, 전부 사랑에 쏟고 있었다. 마치 영원하기도 한 것처럼.

연기에 꽤 흥미도 있고 재능도 있었던 그는 보통 조력자의 도움을 받는 주인공 역할이었다. 이번에는 조력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진정한 형제라하면, 다른 형제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비켜줄 때도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나의 숨겨놓았던 오점을 지금이라도 돌릴 수 있다면.

카라마츠는 천천히 울음이 조금 멎고, 숨을 고르는 쵸로마츠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쵸로마츠는 그 손수건을 받아 꼭 쥐었다. 집에 있는 동생들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쵸로마츠가 온 줄 모른 채로, 2층에서 조용히 누워있을 것이다. 물을 마시러 일층에 온 카라마츠가 현관문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걸 보고 나온 것이 다행이었다. 다른 형제였다면, 일을 더 크게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반 년 동안 연락도 없던 형제가 갑자기 돌아오는 건 꽤 큰일이니까.

“잘, 지냈나.”

카라마츠는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그 말에 쵸로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카라마츠는 그래하고 대답을 했다.

“오소마츠는?”

형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떠난 후, 남은 형제들끼리는 형이라는 호칭을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서로의 담뱃불을 붙여주는 것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 나름의 규칙이 생긴 셈이다.

“…잘, 지내지.”

쵸로마츠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는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뭐든, 말해도 괜찮다. 나는 다 받아줄 수 있어. 나는 오소마츠와 다른 의미로 너의 조력자니까. 카라마츠는 이럴 때는 말을 삼가라는 토도마츠의 조언이 있었기에-생각보다 토도마츠는 배려라는 걸 잘하는 편이었다. 물론 서툰 형제들 사이에서지만-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했다. 쵸로마츠는 손수건을 쥐는 손에 힘을 주었다 풀었다하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계약서말야….”

“음?”

작은 목소리라 카라마츠는 조금 그에게 몸을 가까이했다. 쵸로마츠는 조금 떨고 있었다.

“있지, 나, 목숨이 잡혀있어.”

그 말에 카라마츠는 더러운 골목에서 오소마츠가 했던 말과, 그 표정이 떠올랐다. 자신이 아닌 쵸로마츠만이 받고 있던.

그 어린 왕의 표정을.

“형이랑, 동생들이 간 다음에, 인사이동이 있었데,”

형이라는 호칭에 카라마츠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쵸로마츠는 그 표정의 변화를 모르는 듯 말을 이어갔다.

“저번보단 조금 더 바쁜 일이거든. 아, 근데 그렇게 걱정하진 않아도 되고. 그냥 조금 높은 사람이랑 같이 다니는 일인데.”

높은 사람이라. 카라마츠는 그 구석에 있던 보안실을 떠올렸다. 거기서 꽤 오래 일하면서도,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큰 회사니까, 인사이동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 사람의 서류를 정리하다가, 내 계약서를 봤어. 거기에.”

쵸로마츠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 뒷얘기를 듣지 않아도 카라마츠는 알 수 있었다. 오소마츠. 이제는 그의 왕국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적어도 카라마츠는 자신들이 떠난 이후로, 오소마츠가 그에게 사실을 아니 비슷한 얘기라도 해주길 바랐다. 적어도 그게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했다. 독립을 하러 인사를 온 오소마츠에게 적어도 쵸로마츠에게 숨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쵸로마츠를 위한다면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말도 함께였으나. 여전히 권력에 취해있을 그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말이었나보군. 카라마츠는 후하고 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다.”

“…어떻게?”

“그냥, 어쩌다.”

오소마츠가 알려줬다는 말이 그리고 그걸 제시한 사람이 오소마츠인 것도, 그리고 오소마츠의 목숨은 걸려있지 않다는 것도. 카라마츠는 이 말들이 입 안에 담겨있었지만, 꺼내지 못했다. 쵸로마츠는 지금의 사실마저도 쓰러질 만큼, 힘들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혹시. 오소마츠 형도 그런 거야?”

“…무슨?”

카라마츠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의문을 던졌다. 당연히 자신의 신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겁이 있는 상식인이라고 생각되는 쵸로마츠니까,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라는 얘기를 꺼낼 줄 알았지만.

“오소마츠 형도 이런 상황인거야? 나, 그게 걱정돼서.”

“하.”

카라마츠는 비집고 나오는 욕설대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사랑의 무한함은 너무나도 잔인해서, 자신의 것보다 연인의 것을 더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소마츠는 어째서 쵸로마츠에게. 카라마츠의 숨소리에 쵸로마츠는 움찔하며, 손수건을 꼭 쥐고, 더 떨면서 입을 열었다. 남은 울음이 담긴 목소리와, 중간중간 숨이 모자라 삼키고 뱉어내는 것이 꼭 시한부 환자 같았다. 그와 쵸로마츠가 닮았다면 닮았지. 카라마츠는 습관처럼 담배를 물려다가, 자신의 담뱃불을 붙이려고 하는 쵸로마츠를 보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머리가 아팠다.

“내가 이런 건 상관없어. 나는. 그냥 이렇게 일. 하는 거. 괜찮으니까. 근데 요즘 오소마츠 형이 너무 힘들어해서. 그래서. 형이 갑자기 그만두기라도 하면. 카라마츠 형도 알잖아? 오소마츠 형이 금방 질려하는 거. 갑자기 그만둔다고 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쵸로마츠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카라마츠가 해줄 것이라고는 그 멍청한 사랑에 빠진 동생을 토닥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쵸로마츠는 한참 울다가, 밤이 깊어지고, 풀벌레 소리마저도 사라진 고요한 새벽이 되어서야 자리를 떴다.

카라마츠는 그런 쵸로마츠를 보며, 담배를 물었다. 스스로 불을 붙이고 뿌연 연기를 내뱉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사랑하고 있다. 이건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왜. 어째서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가. 형제에 같은 날에 같은 얼굴로 태어난 사이라도 서로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었지만, 오소마츠에 관해서는 정말이지. 모르겠다.

카라마츠는 한참동안 현관 앞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조력자라는 말을 담지 않은 방금 전의 자신을,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토도마츠에게 약간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뭔가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적어도

오소마츠의 애정이 어떤 형태인지 보는 것.


“어디 갔다 왔어?”

쵸로마츠가 집에 도착하자, 해가 뜨고 있었다. 지하철 막차는 당연히 끊겨있었고, 쵸로마츠는 차를 들고 가지 않았기에, 부모의 집에서 자취하는 곳까지 네 시간에 걸쳐 걸어올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준 핸드폰도 들고 가지 않아, 오소마츠에게 늦는다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 아니, 길가에 있는 공중전화로 할 수는 있었겠지만, 혹은 도로에 있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면 됐었지만, 쵸로마츠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단지 오소마츠가 없어진다. 라는 사실이 너무 커서, 더 머리에 자리 잡힐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쵸로마츠는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마자, 현관에 서있는 오소마츠를 마주했다. 쵸로마츠는 조금 놀랐다. 자신이 알기로는 오소마츠는 아마 출장을 가 내일 돌아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소마츠는 밤새 거기서 기다렸는지, 옆에는 맥주 캔이 쌓여있고, 그 옆에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자욱한 담배연기와 술 냄새에 뿌연 머리가 더 하얘진 쵸로마츠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냥.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일이 있었다는 핑계라도 대볼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형제들이 떠난 이후로, 자신이 맡던 스케줄정리는 오소마츠의 손으로 들어갔고, 자신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오소마츠의 감시하에 진행되었으니까. 오소마츠는 손에 쥔 쵸로마츠의 핸드폰을 흔들었다.

“전화를 해도 안 받길래-. 형아 걱정돼서 일도 때려 치고 집에 왔는데.”

오소마츠는 말을 하며 쵸로마츠에게 다가갔다. 현관문을 다 닫지 못한 채, 그 앞에 서 있는 쵸로마츠의 팔을 잡아 자신의 쪽으로 당기며 현관문을 쾅하고 닫았다.

“집에 없더라고. 오늘 일도 없었는데. 그지?”

“….”

쵸로마츠가 할 행동이라곤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쯧하고 혀를 찼다.

“요즘 피곤해 보이길래. 오늘은 집에서 쉬라고 했잖아.”

아, 이제는 어제인가? 장난같은 말을 하는 오소마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파. 쵸로마츠가 자신도 모르게 말했지만 오소마츠는 씩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얼굴을 가까이 해, 초첨없는 쵸로마츠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마주하고는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이번엔 대답해. 어디 갔다 왔어.”

“부모님 집에. 두고 온 게 있어서.”

쵸로마츠는 손에 쥐고 있던 카라마츠의 손수건을 보여주었다. 고작 이거?라는 오소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피곤함과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오소마츠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함에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그를 다른 팔로 꼭 껴안았다. 익숙한 체향과 섞인 평소보다 짙은 담배 향, 그리고 그의 말대로 정말 곧바로 돌아왔는지, 바스락거리는 정장의 감촉까지. 정장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을 기다리기 위해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여기서 있었다는 게. 그게 쵸로마츠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만큼 잃기 싫었다. 다시 눈물이 나기 시작해 쵸로마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힘든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어디 가지 말고.”

오소마츠는 팔을 잡은 손을 놓고는 그를 꼭 껴안아줬다. 그리고 속삭이는 말에 쵸로마츠는 그의 애정이, 까딱하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 존재가, 너무 애달파서 그냥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오소마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를 토닥여줬다.


반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많은 것이 변했다. 형제들이 그만 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그 다음날 곧바로, 오소마츠는 회사에서 가까운 집을 구해 이사를 하자고 했으며, 쵸로마츠는 거기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이 원하는 거였으니까. 오소마츠와의 둘 만의 공간이 그에게는 가장 절실했다. 이사가 끝나고, 조금 자리가 잡히자, 오소마츠는 순식간에 영업이사가 되었다. 이게 가장 큰 변화였다. 변두리의 작은 주점에서 경호일이나 하던 그들은, 구석에 책상만 떡하니 있는 보안실이 아닌 중앙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에 올라가게 되었고, 낡고 빈 책상이 아닌,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있는 넓은 책상에, 삐걱이는 의자가 아닌, 푹신하고 좋은 의자에 앉게 되었다. 쵸로마츠는 그의 옆에서 비서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단지 오소마츠의 사무실에서 그 옆에 있는 것뿐이었다. 비서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딱히 더 붙일 말이 없었다. 적어도 쵸로마츠의 명함에 나오는 직위는 그랬으니까. 이름만 비서인 쵸로마츠가 하는 일이라곤 오소마츠의 스케줄이나 무슨 일을 하는 지 정확히 모른 채로 마치 사무실에 있는 화분처럼 멍하니 그를 보는 것뿐이었다.

오소마츠는 자리가 바뀐 만큼 더 많이 변했다. 서류라고는 전부 쵸로마츠에게 넘기고, 대부분의 내용을 모르는 채로 그냥 쵸로마츠가 짜준 스케줄대로 움직였던 그는, 이제는 그 스스로 스케줄을 짜고, 쵸로마츠가 알아듣지 못 할 전문용어를 써가며 거래처와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쵸로마츠는 그걸 그냥 뒤에서 멍하니 서서 듣는 일밖에 하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가 오소마츠에게 있어 어떻게 변하는지 외면한 채로, 그냥 그 변화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는 바빠졌다. 덩달아 따라다니는 쵸로마츠도 바빠졌지만, 확실히는 모른다. 그냥 눈앞에 있는 오소마츠를 바쁘게 따라갈 뿐이다. 가끔 자질구레한 일을 받으면 기쁘게 일을 했고, 그걸로 자신이 오소마츠에게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 그 서류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처리는 빠르지만, 여전히 사소한 정리를 못하는 오소마츠였기에, 오소마츠가 회의를 하고 있으면 그의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일은 쵸로마츠의 일이었다. 그 일에 관해 무지한 쵸로마츠였기에, 하는 일이라고는 그냥 만년필의 잉크를 채우고, 어지러이 널려져 있는 서류를 페이지 순대로 정리해 서류철에 꼽는, 어린 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서류가 있어 유심히 본 것이, 자신의 근로 계약에 관련된 서류였다. 일을 시작하기 전, 서명을 한 기억은 나지만, 조금은 궁금했다. 자신도 오소마츠와 나란히 비슷한 일을 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에는 별 얘기가 없어, 그냥 넘어갔지만 마지막 장에는 신체포기각서가 적혀있었다. 보안일을 할 때, 별 생각 없이 적은 서류였다. 사망 시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설명이 적혀있을 줄 알았건만, 전혀 아니었다.

특별한 사유 없이 퇴사를 희망할 경우, 자신의 신체는, 그러니까 생명은, 회사의 마음에 따른다는 소리였다. 쵸로마츠는 이 일을 관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서류를 봤을 때는, 별 생각 없이 넘겼다. 자신의 능력으론 이런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도 없고, 게다가 오소마츠와 함께 일한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조금 불안해져갔다. 오소마츠의 서약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소마츠는 지금 자신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일을 굉장히 바쁘게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만약, 힘들다며 그만두게 된다면. 그는 어떻게 되는 걸까. 가끔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쵸로마츠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들어간다면. 그렇게 생각하자 쵸로마츠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오소마츠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일만으로도 충분히 힘들 테니까. 거기에 내가 더 보탤 이유는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 때쯤, 생각난 게 카라마츠였다.

그 행동이 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이다. 브라더.”

새벽에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오소마츠와 같이 출근해, 사무실에 도착하자, 정장을 입은 카라마츠가 있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에게 인사를 건넨 그는, 그 동안 모은 돈을 다 써버려, 급하게 재취업을 했다며 웃었다. 그 말에 오소마츠는 장난처럼 그를 놀려댔고, 쵸로마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한 채, 오소마츠의 눈치를 봤다. 자신이 카라마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들키기 싫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쵸로마츠의 마음을 아는 듯이, 그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오랜만이다.”

“응, 오랜만이네.”

쵸로마츠는 억지로 웃으며 카라마츠가 내민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를 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와 악수하는 쵸로마츠를 보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 아니 오늘인가? 아무튼 부모의 집에 간 건, 카라마츠를 만나기 위함이겠지. 쵸로마츠가 내민 손수건으로 눈치를 챘다. 그런 반짝이는 파란색의 손수건은 카라마츠말고는 아무도 안 쓸테니까. 무슨 부탁을 했으려나.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동그란 뒷통수를 보기만 했다. 쵸로마츠는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를 때가 있다. 그 부분이 질리지 않아서 귀여웠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는 그 생각의 끝에는 항상 자신의 애정을 바라고 있었다. 이 부분도 귀여웠다. 쵸로마츠에게 뭔가 속삭이는,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의 부탁 때문에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거겠지. 여전히 형제를 위해서라면 열심히 하는 녀석이니까.

새벽녘에 울다 지쳐, 잠깐 잠이든 쵸로마츠를 보다가 하타보에게 연락을 받았다. 카라마츠가 일을 하고 싶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고. 오소마츠는 그 말에 마침 내 사무실이 좀 바쁘니 여기에 꽂아달라는 말을 하였다. 하타보가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걸 이용해 이 상황을 만든 거니. 어릴 때의 트라우마라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그렇게 큰 회사를 쥐고, 일본 경제의 한 축을 그으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동갑의 친구의 말을 아직도 이렇게 잘 듣고 있다니.

자신의 어릴 때의 만행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하타보에게 뭔가를 했는지, 그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슬펐는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바에야, 쵸로마츠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다. 하타보를 구슬리기는 너무 쉬웠다. 어릴 때 너를 괴롭혔던 내 동생들을 한 번 놀려보라는 식으로, 거기에 취직을 시키고, 괜히 겁을 주는 척을 하는 걸로 어때. 자신의 장난 같은 말에, 그 순수한 친구는 모든 걸 만족한 듯 웃었다. 뭐 물론 사업가는 사업가인지, 원하는 게 있었기에 그걸 들어주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오소마츠가 바라는 방향이었다. 쵸로마츠가 그렇게 취직이 하고 싶다면, 평생 일을 하는 직장을 얻어다주는 것도 좋으니까. 형제들이 전부 그만 둔 후에, 하타보는 이제 장난은 끝났다며, 오소마츠에게 이런 저런 테스트를 시키더니. 오소마츠가 영업에 꽤 소질이 있다며, 쓸데없이 바쁜 자리에 그를 꽂아버렸다. 뭐, 조금 바쁜 걸 빼면, 전혀 어렵지도 않고, 하타보의 예의 테스트라는게 꽤 굉장한 거였는지, 자신에게 일이 꽤 재밌기도 했다. 그런 생각은 평생 할 생각이 없다고 느꼈었는데.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을 더 재밌게 한 쵸로마츠가 바로 옆에 있었다.

오소마츠가 이사자리를 꿰차자,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쵸로마츠는 꽤 귀여웠다. 오소마츠가 뭔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으면, 그 뒤에서 뭔가를 도와줘야하지 않을까라는 안절부절 하는 행동이나, 어떻게 눈치를 채서 도와주는 일을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자신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 그래서 그 자리를 지키면서 나의 애정을 바라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랑스러워서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쵸로마츠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서류가 아닌, 내 자신을 보고, 내 명령을 기다리는 꼴이 정말이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오롯이 나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 나를 위한.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오소마츠는 자신도 모르게 쵸로마츠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묘하게 노려보는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의 표정을 눈치 채고는 보라는 듯, 더 크게 웃었다. 즐거웠다 . 카라마츠는 분명 저번처럼 자신을 막으러 온 거겠지.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절대 그럴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능청스럽게 다른 ‘동생’들의 안부를 물었고, 그에 카라마츠는 ‘형제’들은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오소마츠는 결국 소리를 내서 크게 웃고 말았다.

“카라마츠는, 변한 게 없구만.”

“너도.”

짧게 하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뭐 어쩌겠어. 오소마츠는 어깨를 으쓱했다. 동생들위에 군림하는 건 오소마츠에게는 2순위였다. 1순위는 당연히 쵸로마츠였고. 독립을 한 상황에서 더 이상 거기에 더 신경을 쏟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쵸로마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오소마츠는 자신의 책상으로 가, 놓여있는 오늘의 스케줄을 읽었다. 자신의 밑에는 스케줄을 조정해주는 사람만 세 명이 있었으며, 그를 위한 기사와 신칸센의 표라던가 자질구레한 전화를 받아줄 사무실 앞 비서와, 지금 건물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헬리콥터 또한 있었다. 이 많은 인력이 오소마츠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소모되고 있었고, 그만큼 오소마츠는 꽤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어제의 출장을 가지 못 한 벌이라도 되는 양, 종이 두 장에 빼곡히 적혀있는 스케줄을 읽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는 무슨 일을 하러 왔는데?”

내 보안이라면 쵸로마츠가 맡고 있는걸. 이라는 뒷말을 하며 오소마츠는 힐끔 어느샌가 자신의 옆에 온 쵸로마츠를 봤다. 쵸로마츠는 그 말에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표정에 오소마츠는 목이 탔다. 지금이라도 쵸로마츠가 정갈하게 입은 정장을 다 찢어버리고, 그의 다리사이에 쑤셔 넣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오늘 새벽에 울며 들어왔을 때 보다 더 크게 울부짖게 해줄 수 있는데.

“외부 보안.”

“아. 필요하긴 했지.”

오소마츠는 하타보의 일처리능력에 새삼 놀랐다. 단지 이 사무실에 일하게만 해달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이 안의 일을 전부 아는 것이 분명했다. 정작 보안이 필요한 건 밖으로 나돌아 다닐 때긴 하니까. 내부 보안이라는 자리를 가진 쵸로마츠는 보안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일을 하고 있었다. 회의에 참가도 하지 않고. 출장이 잦은 일이라 사무실에 자주 없는 오소마츠를 사무실에서 서류정리나, 청소, 집기의 정리-나오지 않는 펜 따위를 확인하는 일-만 할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얌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오소마츠를 기다리는 것.

오소마츠는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상대의 니즈와 자신의 니즈를 맞추고, 가끔은 기싸움을 하기도 하고, 출장이 없는 날에는 지루해서 졸음이 쏟아질 것만 같은 몇 번의 회의에 참석하는 일을 반복했다. 현장에서 퇴근해도 되는 일이 주였지만 오소마츠는 대부분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여기저기에 모두 쵸로마츠의 손길이 닿은 사무실에 들어와 가만히 책상 옆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는 쵸로마츠를 보면 그야말로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는 책상에 쵸로마츠가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서류철 중 하나를 꺼내 카라마츠에게 건내었다.

“이거 읽고 있어. 조금 있다 나가야되니까.”

“무슨…?”

카라마츠는 어리둥절하게 그 서류철을 받았다. 오소마츠는 자리에 앉아 쵸로마츠에게 손을 내밀었고, 쵸로마츠는 익숙하게 자신의 주머니에 꽂혀있는 만년필을 손 위에 올려주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재미없잖아? 오늘 만날 거래처랑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야.”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보며 빙긋 웃었다.

우리사이에 다른 사람을 끼우는 게 얼마나 재미없는 지 보여줄게.



@dlt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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