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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쵸로] 계획

두꺼운 여행책. 곳곳에 붙여져있는 포스트잇. 잔뜩 써져있는 수첩. 이것이 마츠노 쵸로마츠의 여행의 시작이다.


-@it_217



오소마츠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장난삼아 우리 어디 멀리 여행갈까? 라는 말을 한 것이 일주일전. 들은 체도 하지않던 쵸로마츠는 그 다음날 여행책을 사왔고, 이튿날에는 그것을 완독했으며 삼일 째부터는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사흘째에는 수첩에 계획을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 일주일 째. 자신이 말한 것이라고는 멀리, 여행일 뿐이었다. 해외 여행인지 -물론 그럴 돈은 전혀없지만- 국내 여행인지, 당일치기인지 오랜 기간동안 가는 여행인지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쵸로마츠는 열심히 여행책을 읽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수첩에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쓸데없이 강한 오소마츠를 위해서. 오소마츠는 그런 쵸로마츠를 보면서 항상 아 사랑스럽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예민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엇도 시작하지 않는 성격 탓에 형제들의 막무가내의 행동에 머리아파하고, 소리를 치고, 잔소리를 하는 쵸로마츠는 가끔 오소마츠가 무언가가 하고싶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부터 준비를 한다. 그게 정말 스쳐지나가는 말이든, 형제들에게 장난삼아 하는 말이라던가 하물며, 정말 말도 안되는 경우조차도. 


팔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났다. 오소마츠는 맞은 편에 앉아있는 쵸로마츠를 쳐다봤다. 그는 새로운 지역의 여행책자를 정독하고 있었다. 여행책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초록색 수첩과 펜이 보였다. 이 행동은 언제쯤 끝나는 걸까? 모든 지역의 여행책을 보고 모든 경우의 수의 계획을 세울 때 쯤? 그게 가능할까? 만약 지금 오소마츠가 가고 싶은 지역과 기간의 계획이 딱 들어맞는다 하더라도 그는 쵸로마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걸 제일 잘 알고있는 것이 지금 계획을 열심히 짜고 있는 쵸로마츠이다.


오소마츠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럼 너는 무엇을 위해 계획을 짜고 있는거지? 오소마츠가 무엇을 하고싶다라고 하는 순간부터 그는 열심히 계획을 세우지만 정작 그 계획대로 뭔가가 된 적은 거의 없다. 그걸 모르지 않을텐데도 그는 항상 그런 패턴이다. 계획에 열중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지는 못한다. 이뤄지지 못하는 것들로 쓰여진 그의 수첩들을 볼 때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오소마츠의 시선을 느꼈는지 쵸로마츠는 책에서 눈을 떼고 그를 쳐다봤다.


"왜?"


쵸로마츠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오소마츠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너는 항상 이 계획을 세울 때 무슨 느낌일까. 이뤄지지 못할 것에 열심히 시간을 투자하는 행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오소마츠로 부터 시작하고 그것의 씁쓸한 결과 또한 그에게서 끝이 난다. 자신이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온 계획이 눈 앞에서 무너졌을 때의 감정이란 오소마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괴로울 것이다. 특히 그런 계획적인 성격인 쵸로마츠에게는.


"안 힘들어?"


쵸로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소마츠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주어나 목적어를 빼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걸로 그에게 들킨 여러가지 약점만 해도 수십개는 넘을 것이다. 혼자 먹으려고 사온 과자나 콘서트를 위해 모아온 돈 같은거 말이다.


"뭐가?"

"그거."


오소마츠는 턱으로 자신이 보는 여행책을 가리켰다. 쵸로마츠는 자신이 보고 있던 책을 다시 내려다봤다. 해외여행 추천서였다. 정리도 잘 되어있었고, 사진도 많아 보기 편하기에 산 것이다. 저번 책인 국내여행 추천서보다는 필자의 감상이 많이 적혀있어 읽기 편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책? 볼 만한데. 읽게?"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뭐?"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빤히 쳐다봤다. 감이 안잡혔다. 그의 질문이.뭐야 또 놀리는 건가? 놀릴 거리라도 찾은건가? 오소마츠는 그런 쵸로마츠를 쳐다봤다.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있었다. 음. 좋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표정. 어쩌면 오소마츠의 그 나쁜 버릇은 팔할은 쵸로마츠때문일 지도 모른다. 항상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는 지금과 같은 표정을 하니까.


"그러니까 너는 지금 이 계획을 세우는 행동이 힘들다거나 귀찮지 않은거냐고"

"아..."


이제서야 알았다는 표정.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쳐다보았다. 거짓말을 못하는 그는 얼굴표정에 생각이 다 나타나는데 그걸 보는 것이 오소마츠의 삶의 낙이었다. 보자. 우선 미간을 찌푸리고. 아 이건 고민하는 표정이다. 눈을 감았고. 음.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하는데?


"으음...음..."


앓는 소리까지 내며 고민을 하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쵸로마츠는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음에 분명하다. 그러니까 지금 너는 나를 위한 이 수많은 시간투자와 시행착오가 힘들다는 생각이 없다는 거지? 그래 이 일주일 간의 물론 과거의 일까지 더하고 좀 더 부풀리면 그의 인생의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의 시간을 나를 위해 쓴다는 것 아냐. 근데 그걸 전혀 아까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는거지? 아 사랑스럽다 진짜. 


"아냐. 그렇게 신경쓰지마. 하던거 해."

"뭐야. 진짜."


쵸로마츠는 감았던 눈을 떠 오소마츠를 보았다. 윽. 기분 나쁠 정도로 웃고 있잖아. 뭐지 진짜 약점이라도 잡힌건가? 나 아무것도 안했는데? 물음표로 가득찬 쵸로마츠의 얼굴을 보면서 오소마츠는 정말 실없이 웃고있었다. 너의 시간은 나를 위한 것으로 가득 채워져있구나. 그리고 그건 내가 깨부숴버리지만 그걸 알면서도 너는. 나를 위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뭘?"


오소마츠의 기분에 반비례해 쵸로마츠의 기분은 묘하게 나빠졌다. 아니 오늘의 오소마츠는 진짜 이상하다. 평소에도 이상했지만 오늘은 정도가 심하다. 남 모를 얘기만 하고 있잖아! 그러다가 혼자 좋아서 실실 웃기나하고. 이상해 진짜. 쵸로마츠는 미간을 찌푸린채로 즐거워하는 오소마츠를 노려봤다. 애석하게도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와 다르게 의도를 드러내는 표정을 하는 타입이 아니라 그렇게 봐도 모르겠지만. 


그는 결국 오소마츠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포기했다. 나중에 때가 되면 놀리거나 말을 해주겠지. 하. 한숨을 쉬고는 다시 책에 눈을 맞췄다. 


팔락. 다시 책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는 책에 열중하는 쵸로마츠를 쳐다만 볼 뿐이었다. 너의 시간의 대부분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아는 순간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dlt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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