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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샘플

보쿠라노AU 오소마츠상 b5 122p

2016년7월어서오소마츠상에나왔던 우리들의Au오소마츠상올캐러본 샘플입니다.  

매진감사합니다


0. 프롤로그

 

그 로봇을 처음 본 것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까맣고 커다란 로봇. 움직이면 대지가 흔들리고, 발을 딛는 순간 그 주위의 집이 먼지처럼 흩날릴 정도의 크기였다. 도시에서 우뚝 서 있던 크고 검은 물체. 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신문에서도 1 면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인명 피해는 200여명 이라는 큰 글자가 적힌 채로. 로봇은 잠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두들 환상을 본 것이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물론 200여명의 사람들과 그 유가족들은 전혀 그렇지 않겠지만.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나에게 가까운, 소중한 것들만이 기억된다.

 

하지만 그것이 나타난 것은 한 번 뿐. 그 이후로는 전혀 나타나지도 않았다.

더 이상의 보도나 연구 또한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혀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

마치 전혀 상관없는 남들의 죽음처럼.

 

 

시작은 평범했다. 다들 늘어져 있는 평일 오후에 토도마츠가 핸드폰으로 본 작은 광고에서 시작됐다. 가끔 사고라는 것은 작고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곤 한다. 실수로 다리를 삐끗했는데, 생각보다 길게 입원을 하게 되는 경우라던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토도마츠는 습관처럼 자주 들어가는 인터넷 쇼핑몰의 한 켠에 있는 작은 광고를 봤다. 본래 광고같은 것은 잘 보지 않는데, 화려한 광고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성의없는 하얀 배경에 큰 까만 글씨로 적혀져 있어 도리어 눈에 확 띄어 버렸다.

 

-조종사 모집-

 

게임에나 나올 법한 문구였다 토도마츠는 광고의 문구가 웃기다며 늘어져 있던 형제들을 불러 모아 보여줬다. 작은 광고 창을 찾지 못해 헤매는 형제들에게 토도마츠는 광고 창을 가리켜 보여줬다. 보통의 광고 배너와는 다르게 투박하고 큰 글씨가 번쩍거렸다. 하지만 그 다음 문구에는 파격적인 혜택이 뒤따랐다. 고액의 연봉과 훌륭한 복지. 그리고 공무원 급의 지위. 거짓말 같은 내용이었다. 번쩍거리는 문구들에 가장 큰 흥미를 가진 사람은 삼남 쵸로마츠였다.

 

“지원 조건은 뭔데?”

 

빛나는 눈으로 토도마츠의 화면을 보는 쵸로마츠에게 토도마츠는 게임 광고가 아니었어? 라고 대꾸하며 광고 배너를 눌러보았다. 배너와 같은 하얀 창이 떴다. 예의 모집광고가 크게 적혀있었고, 밑에는 배너에 적혀있던 혜택들이 죽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밑에 모집조건에는 ‘6명을 구합니다.’

라고만 적혀있었다.

 

“6명? 에게, 겨우 이것뿐이야?”

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오소마츠.

 

“훗. 마치 우리들을 부르는 하늘의 계시같군.”

이라는 안쓰러운 소리를 내뱉는 카라마츠.

 

“여섯 명이면 되는 거야? 어디로 지원하면 되는데? 기간은?”

눈을 반짝이며 이력서를 꺼내는 쵸로마츠.

 

“.....”

말없이 자리로 돌아가 고양이를 쓰다듬는 이치마츠.

 

“야구?? 하하 이거 뭔데??”

웃으면서 화면만 빤히 쳐다보는 쥬시마츠

 

“근데 이거 뭘 조종하는 거래? 그건 안 나와 있어?”

조종사라는 말이 웃기다면서 보여준 주제에 조종자체에 가장 큰 흥미를 보이는 토도마츠.

 

이렇게 총 여섯 명. 마츠노가의 여섯 쌍둥이이다. 24살. 고졸. 무직. 이렇다 할 스펙이 전혀 없는 그들에게 가장 최고의 기회가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쵸로마츠는 토도마츠의 핸드폰을 뺏어 자세히 읽어보았다. 혜택은 굉장했다. 국가직. 연봉 600만엔. 인센티브 지급. 연금 지급.숙식 제공. 무슨 일을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정도의 조건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을 했다. 할로 워크에서 자주 찾던 조건과는 급이 다른 느낌이었기에 쵸로마츠는 신이 났다. 스크롤을 죽 내려 보니 연락처가 있었다. 핸드폰을 다시 달라고 성화인 막내 동생을 무시하고 그 연락처를 받아 적었다.

 

“.....지원하게?”

 

고양이를 안고 옆으로 온 이치마츠가 물었다. 그는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척 하지만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았다. 쵸로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런 조건인 일자리는 더 이상 못 구해!”

 

쵸로마츠는 눈을 반짝이며 형제들에게 선언했다.

 

“너희들도 같이 지원하는 거니까!! 다들 이력서 쓰라고!!!”

“에- 왜 마음대로 정해?”

“맞아-”

 

취직에 유난히 관심이 없는 오소마츠와 토도마츠의 귀찮다는 대답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은 들뜬 모습이었다. 조종사.어렸을 때부터 소년들끼리의 흔한 꿈 중 하나였다. 어릴 때 다 함께 보던 만화에도 자주 나왔었고, 그것을 따라하는 놀이도 자주 하였었다. 어차피 지원할 거면서 튕기기는 라는 생각을 하며 쵸로마츠는 이력서 뭉치들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됐고, 써. 여섯 명이여야 지원된다고 하잖아.”

 

 

이력서를 받아든 형제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각자 자리로 가 천천히 쓰기 시작했다.

 

쵸로마츠는 옆에 있는 이치마츠에게도 이력서 뭉치를 내밀었다. 워낙 자기주장이 없는 편인 그는 말없이 받았지만, 그의 눈은 평소보다 조금은 생기있어 보였다. 그는 쵸로마츠의 반대편에서 거울을 보며 이미 조종사가 된 것 마냥 혼자 도취해있는 카라마츠에게 여분의 이력서를 던졌다. 둘은 딱히 사이가 좋지는 않다. 그것을 보며 쵸로마츠는 어느샌가 토도마츠의 핸드폰을 들고 조종사? 조종?? 하며 여전히 텐션이 높은 쥬시마츠에게도 볼펜을 쥐어주었다.

 

“쵸로마츠- 이건 뭐 적으면 되냐?”

 

쵸로마츠는 열심히 이력서를 쓰고 여러 회사에 지원하던 자신을 비웃던 형제들이 자신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가면서 평소 장난으로 써오던 이력서를 꽤나 열심히 적는 형제들을 보면서 어쩌면 이번에는 다들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한다면 하는 형제들이니까. 쵸로마츠도 평소보다 더 정성들여 이력서를 써내려갔다.

 

쥬시마츠의 한자를 교정해주며 쵸로마츠는 쥬시마츠가 옆에 둔 토도마츠의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연락처는 주소뿐이었다. 흔한 전화번호나, 이메일 하물며 회사 상호 또한 적혀있지 않았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뭐, 블랙공장도 갔다 온 사람들이니 별 일 있겠어. 라는 생각을 하며 쵸로마츠는 형제들의 이력서를 곱게 접어 편지봉투에 넣었다. 메모한 주소를 편지봉투에 적고, 우표를 붙였다. 그리고 집 근처 우체통에 넣고 나서야 그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어딘지 알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테니까.’

 

쵸로마츠는 형제중에 유일하게 핸드폰을 가진, 토도마츠의 것을 빌려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곳의 위치는.

 

생각보다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아니 너무 빨랐다. 무엇에 쫓기는 것 마냥. 우편을 보내고 이틀 뒤, 전화가 왔다. 서류 합격이 되었노라고. 그 전화를 받은 것은 어머니였고, 눈물로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 날 저녁은 몇 년 전에야 먹은 기억이 있었던 어머니의 수제 함박스테이크였다.

 

어머니가 전화로 받아온 전달 사항은 이러했다.

회사 내 기숙사가 있으므로 내일 곧바로 입소할 수 있게 준비를 해놓을 것.

입소 후 간단한 테스트 이후에 입사 유무을 알려 줄 테니 외부인에게 알리지 말 것.

 

그리하여 어머니는 혹여 겨우 붙은 직장에서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시장에서 기분이 좋아보인다는 말을 들어도 그런가요 라는 말로 넘겼다고 하셨다.

 

“친구들에게도 알려주면 안 돼.”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들은 모르지만 사뭇 진지하게 말하시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알았다고 끄덕일 뿐이었다. 근처에 사는 소꿉친구인 토토코에게 자랑이라도 하려했던 오소마츠는 싫다며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지만 어머니는 끄떡하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그의 투정에 귀여우니 어쩔 수 없다며 넘어갔지만, 이번은 단호했다.

 

“무슨 말을 들었는데?”

 

조금 이상한 것을 감지한 쵸로마츠가 그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어차피 우리가 가야되는 곳이잖아. 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녀는 말없이 빈 그릇을 치울 뿐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형 내 핸드폰으로 주소 검색해보지 않았어?”

토도마츠가 뭔가 떠오른 듯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형제들의 시선이 어머니에서 쵸로마츠로 모였다. 쵸로마츠는 갑자기 시선이 몰린 것에 당황하며 말을 했다.

 

“벼..별 거 안 나오던데..”

“거짓말...”

 

쵸로마츠는 거짓말이 서툴다. 얼굴에 거짓말이라는 것을 다 알려주는 표정을 짓고서는 시선을 피하곤 했다. 옆에서 나지막히 일침을 놓는 이치마츠를 노려보고는 입을 열었다. 여전히 시선은 천장을 향했고, 얼굴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어차피 내일 가면 알 텐데.”

 

그는 더 추궁하려는 형제들의 눈초리를 피하듯 벌떡 일어나며 짐이나 싸. 내일 일찍 일어나야 되니까! 하고 말하고는 먼저 올라가버렸다.

 

“왜 저런대?”

“몰라. 아 근데 나 검색이력 찾으면 나오는데 뭐.”

 

토도마츠는 능숙하게 핸드폰을 다루면서 그가 검색한 페이지를 찾았다. 작은 화면을 보겠다고 삼삼오오모인 형제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의심은 좋지 않지. 그렇지 않나? 형제들이여.”

 

카라마츠의 말처럼 쵸로마츠의 말이 맞았다. 검색결과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억지로 지운 것 마냥 하나의 흔적도 없었다.

 

 

 

 

 

 

 

1. 아츠시

 

“우와아...”

 

여섯 명의 마츠노들은 각자의 짐을 들고 자신의 앞에 있는 큰 철창을 보았다. 누구의 출입도 허가하지 않겠다는 듯 우뚝 서있는 철창의 위에는 철사 망이 어지럽게 얽매여져 있었다.

 

쵸로마츠는 사진에서 본 것과 같은 풍경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형제들이 물었을 당시에는 뭐 어떠랴 싶은 생각이었지만,다른 형제들에게도 알려줄 것 그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도 뭐 죽기라도 하겠어?

 

그 큰 철창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진 최소 30미터는 넘어 보이는 콘크리트 벽에는 건물명이나 하물며 번지 수 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을 처음 간 그들은 군 기지인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을 데리러 온 차가 군의 차였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서류합격증서와 함께 군인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근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형제들의 질문을 무시한 채 묵묵히 운전만 할 뿐이었다. 대답 없는 그에게 지친 그들은 신나는 마음으로 나 이제 군인인거야? 총도 쏘는 거지? 멋지다! 굉장해! 라는 말도 했었다.

 

철장 문이 열렸다. 묵직한 문에 걸맞게 큰 쇳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을 보며 형제들은 조금 불안해졌다. 철장은 생각보다 빽빽했기에 안의 구조가 잘 보이지 않았다. 허나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벽과 똑같은 콘크리트 건물들의 풍경은 마치 교도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어가도 되는 거야?”

 

불안한 목소리로 토도마츠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우린 합법적으로 취직한거야.”

 

쵸로마츠가 올 때부터 손에 꽉 쥐고 온 합격통지서를 펼쳐보았다. 그는 혹시 몰라 챙겨온 신분증도 들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 하는 건데?”

“그건...”

“들어가 보면 알겠지.”

 

장남의 질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쵸로마츠 대신 이치마츠가 대답했다. 그는 상황판단이 빠른 편이었다. 그 판단이라는 것이 저항을 빨리 포기하는 결론만 내리는 것뿐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그냥 되는 대로 가보자. 이것이 그의 행동의 대부분의 근거였다. 이치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쥬시마츠도 입을 모았다.

 

“응응!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어!”

“그건 여기에 전혀 맞지 않는 속담인데.”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오소마츠는 눈썹을 씰룩였다. 딱히 반대하는 사람은 겁이 많은 토도마츠뿐. 모두들 장남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돌아가버리면 토토코쨩한테 자랑 못 하니까-.

 

“가자!”

 

힘차게 걸어가는 장남을 따라 형제들도 신나게 들어갔다. 토도마츠는 조금 불안했지만, 혼자 남는 것 보다는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카라마츠의 뒤에서 그의 옷깃을 잡고 걸어갔다. 그의 작은 습관이었다. 형의 뒤에 숨는 것. 마치 형이 자신을 지켜줄 것처럼. 자신이 일을 일으켜 처벌을 받아야 할 때도 말이다.

 

그들이 들어서자 열린 철창이 다시 큰 소리를 내며 닫겼다. 오소마츠는 이 문이 닫기는 순간 돌아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이 닫기면서 내는 소리가 이상하게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분명 문이 열릴 때와 같은 소리일 텐데도.

 

쿵 하고 닫겨 버린 문을 힐끗 본 그는 아까 자신과 형제들을 태워온 차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선택지는 없었겠군. 하고 생각했다.

 

그들은 안을 둘러보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큰 회색 건물. 밖에서도 보았지만 안에는 더욱 더 교도소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가본 적은 없지만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보던 곳과 비슷했다. 큰 회색 건물과 그 옆으로 비슷한 디자인의 낮은 건물들이 있었다.그 건물들의 입구는 철창으로 막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쪽으로는 운동장이 있었다. 운동장에는 흔한 철봉같은 것도 없었다.단지 계주용 라인만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넓은 부지와는 다르게 사람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요한 풍경과 회색 건물의 조화로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여기 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토도마츠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큰 회색 건물의 철창이 열리고 누군가가 나왔다.

 

“어서와, 마츠노.”

 

토도마츠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친구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츠시?”

 

깔끔하게 정돈된 갈색머리에 남색 정장과 그에 어울리는 보라색 셔츠를 걸치고 포인트인 밝은 노란색의 타이, 그 타이에는 반짝이는 넥타이 핀이 걸려있었다.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까닥 고개인사를 했다. 그는 아츠시. 토도마츠의 친구였다. 친구...라고 해도 될 정도의 사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토도마츠에게는 친구였다. 아마. 성만 알고 이름을 모르는 관계를 친구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토도마츠는 자신에게 흥미있는 것만 듣는다. 이름은 들었지만 그가 자신 명의의 차나 집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에 잊어버렸다.

 

“육둥이에 성이 마츠노라길래 설마했는데, 진짜구나.”

“아... 흔하지 않지.”

 

하하. 토도마츠는 어색하게 웃었다. 정정한다. 토도마츠에게 그는 친구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이상향. 혼자서 생각하는 라이벌정도이다. 물론 기본적인 스펙을 따지자면 아츠시의 쪽이 훨씬 굉장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자신이 낫다고 자기위안을 하며 혼자 삼고 있는 라이벌 상대인 것이다.

 

그는 시선을 돌려 다른 형제들을 보며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아츠시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토도마츠는 라이벌의 스펙이 한 단계 더 올라가는 느낌을 받으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여기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드는 구나.

 

아츠시의 안내를 따라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쳐 그는 6호실이라는 곳의 문을 열었다. 외견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가정집처럼 꾸며진 곳이었다. 방문 곳곳에 서 있는 군인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츠시는 자신의 넥타이 핀을 힐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

 

“지낼 곳은 여기입니다. 방이 여섯 개가 있으니 각자의 방을 사용하시면 되고...”

“잠깐만, 각 방이라고?”

 

아츠시의 말을 끊고 오소마츠가 되물었다. 아츠시는 예상외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와, 드디어 쓰는구나 각방!!”

 

오소마츠는 신나게 소리를 치고는 뛰어가 모든 방을 열어보았다. 다른 형제들도 그를 따라 다른 방들을 선점하기 위해 뛰어갔다.토도마츠를 제외하고. 토도마츠는 그런 형제들을 보며 정말 부끄럽다는 생각뿐이었다. 형제끼리였다면, 상관없이 그도 형제들처럼 방을 보고 좋은 방을 선점하기 위해 말다툼을 했을 텐데, 하지만 그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토도마츠는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쓴다. 특히 자기보다 잘난 상대라면 더더욱.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야지만 그들과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츠시에게 적어도 평균적인 남성으로 보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깨지는 것을 보며 토도마츠는 눈을 감았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형제들이 많으면 재밌구나.”

 

꿈을 깨는 소리를 들으며 토도마츠는 다시 눈을 떴다. 아츠시는 웃으면서 형제들의 다툼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이 조금 부러워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지. 토도마츠는 쓰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가-.”

 

다 죽으면 좋을 텐데.

 

아츠시는 형제들에게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들의 방 선점에 대한 다툼을 재미있게 보면서. 토도마츠는 그 시간이 지옥같았다. 그들의 다툼이 어느정도 끝날 즈음, 아츠시는 손목시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시간입니다.”

 

그제서야 형제들은 그의 존재를 눈치 챈 듯 고개를 돌렸다.

 

“어떤...?”

“입사테스트요.”

 

아츠시는 웃음을 섞으며 말했다. 입사테스트. 토도마츠는 자신의 형제들이 얼마나 웃기게 보일까라는 생각에 그의 행동에 조금 움찔했다.

 

입사테스트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건강검진과도 비슷했다. 심리상담이 포함된. 애초에 장소 또한 건물 내부에 있는 병원이었다. 규모가 큰 건물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가끔 목석처럼 서 있는 군인들을 제외한다면. 그들은 검진을 받으러 가는 중에 아츠시에게 무슨 일을 하는 지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여유롭게 테스트 후에 알려드리죠. 라는 말만 반복했다.

 

모든 검진이 끝난 후, 의사가 모두 건강하다고만 말을 해주었다.

 

“그럼 합격인가요?”

 

불안한 목소리의 쵸로마츠가 물었다. 심리상담에서 그는 왕창 깨졌다. 자존감이 낮은데다가 자의식은 지나치리만큼 높았다. 기업이 원하는 이상과는 전혀 먼 결과였기에 불안해했다. 분명 항상 읽는 자기계발서에 있는 질문을 받았는데, 받는순간 머리가 하얘졌기에 아무 대답도 못한 경우도 많았다. 물론 자신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정상은 아닌 형제들이 많았기에 불안은 더 커졌다.유일히 정상인인 자신이 이런 결과라면 다른 형제들은 불 보듯 뻔하니까.

 

“합격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 대답은 의사가 아닌 건물 내의 스피커에서 들렸다. 의사와 아츠시는 건조한 축하의 말을 건내면서 박수를 쳐줬다.

 

“축하합니다.”

“축하해 마츠노. 형님들도.”

 

의사는 조금 떨고 있었고, 아츠시는 천장에 달려있는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축하를 받는 형제들은 뿌듯했다. 합격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약간의 전율이 흐르기도 하였다. 그 순간.

 

 

“안녕하십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에 다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그 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형도 들었어?”

 

혼란스러워 하는 육둥이들을 비웃듯 다시 한 번 예의 그 목소리가 말을 했다.

 

“위쪽입니다. 위.”

 

그의 말을 따라 모두들 고개를 위로 올렸다. 그러자 한 이 미터가 못 되는 높이에 떠있는 작은 인형 같은 물체가 떠있었다. 생김새는 조악했다. 곰 같은 얼굴형에 쥐 같은 큰 귀를 달고 있었고 몸뚱이는 너무나도 작았다. 색은 하얀색이 전부였다. 얼굴 양 볼에 분홍색 동그란 볼터치를 제외하고는. 싸구려 마스코트 인형도 이것보다는 귀엽겠다.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자 송곳니로 가득찬 입안이 보였다.

 

“인형???”

 

쥬시마츠가 손을 뻗어 그 인형을 만지려 했다. 그의 손을 가볍게 피한 물체는 쥬시마츠의 머리 위쪽으로 움직였다.

 

“떠 있잖아...”

“무슨 원리지?”

 

떠 있는 것에 신기해하는 카라마츠와 인형의 위쪽을 보며 연결된 실 같은 것이 없나 찾아보는 쵸로마츠.

 

“풉, 근데 디자인 너무 촌스러운 거 아냐? 역시 국가제작이겠지?”

“푸풉, 그러게.”

 

어이없는 디자인에 비웃는 토도마츠와 오소마츠. 그리고

 

“아이! 아이!!”

“...”

 

그것을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쥬시마츠와 별 감흥 없다는 듯 고양이용 장난감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이치마츠.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아츠시.

 

쥬시마츠의 빠른 손놀림을 가벼운 움직임으로 피해 다니던 물체는 툭하고 쥬시마츠의 머리 위에 앉았다. 아니 서있다고 해야 할까. 쥬시마츠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양 손을 자신의 머리 위로 올려 그것을 세게 잡았다.

 

“잡았어!”

“오- 쥬시마츠 굉장한데?”

 

인형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플라스틱 같은 촉감이었다. 쥬시마츠는 촉감이 꽤 마음에 드는지 꽉 쥐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인형은 딱히 저항을 하지 않았다. 아츠시는 그 인형을 정중하게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은 코에무시입니다. 당신들의 근로 계약을 도와줄 사람이죠.”

“에? 그럼 상사인거야? 인형인데?”

 

여전히 인형의 머리 위에 달린 실이 없나 관찰하던 쵸로마츠가 되물었다. 아츠시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이 여섯 명인가요? 생각보다 정신없군요. 생명력은 있어 보여 좋습니다만...”

“많이 말하지 않는 게 좋을걸? 아직 안 했다고. 계약”

“계약??”

 

아츠시와 코에무시의 대화에 쥬시마츠가 꼈다. 그는 기본적인 눈치도 없다. 물론 상식 또한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어쩌면 상사일지도 모르는 둘의 대화에 아무 생각 없이 질문을 날린 것이다. 그의 질문에 아츠시와 코에무시는 입을 닫았다.

 

“계약이 뭣허요?”

 

여전히 코에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는 다시 질문했다. 코에무시는 답이 없었다. 대신 그는 다른 말을 꺼냈다.

 

“우선 ‘교육’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 이번엔 많이 늦었네.”

 

아츠시는 넥타이 핀을 만지작거렸다. 토도마츠는 그 넥타이 핀을 봤다. 심플한 디자인이었지만 어쩐지 그의 취향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핀만 조금 붕 뜬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에게 뭔가를 추가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츠시는 자신의 핀을 보는 토도마츠를 눈치채고는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그리고는 소리내어.

 

“이제 가죠. 순서가 이상하지만 계약 전에 교육부터 먼저 하는 것으로”

 

 

-암전

 

 

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렁였다. 그리고는 위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아야...”

 

쿵하고 넘어진 형제들은 각자 아픈 부위를 만지며 일어났다.

 

“여기가....어디야?”

“순간이동??”

 

주위는 약간 연갈색의 배경으로 뒤덮인 커다란 공의 안 같았다. 그리고 바닥은 딱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바닥을 느끼며 서있었다. 그 위에는 고개를 들어 보니 수많은 같은 모양의 의자가 원 모양으로 놓여져 있었다. 아니 떠 있었다. 족히 30개가 넘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의 의자였지만, 떠있는 모양을 보니 이질감이 들어서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있었다. 마치 사람의 형상과 비슷했다. 그 문양 위에 있는 의자만이 조금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푹신한 쇼파같은, 장난처럼 사장님의자라고 불러도 될만한 느낌의 의자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제 교육을 시작할게. 조금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 각자 조심하고.”

 

어느새 말이 짧아진 아츠시가 앉아있었다.

 

부웅- 공이 흔들리는 느낌이 났다. 형제들은 균형을 잡지 못해 휘청거렸다. 순간 연갈색의 배경이 밖의 배경으로 바뀌었다. 전망대의 아니 그것보다 훨씬 높은 높이에서 보는 배경이었다. 그들이 밟고 있는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아득하게 보이는 것은 방금 있었던 회색 건물들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굉장히 커보였는데, 지금 여기서는 장난감보다도 더 작아 보였다. 휘청거리면서 어지러울 정도인 높이에 형제들은 조용해졌다.

 

“조종사에 지원했지? 우리는 이 ‘로봇’을 움직이는 거야. 몇 달전에 봤던 큰 로봇 기억나? 그거야.”

 

너무 오래 됐나? 라며 아츠시는 신문 조각을 정장 안 주머니에서 꺼내 밑에 서 있는 형제들에게 떨어뜨렸다. 그것을 받아챈 쥬시마츠와 그를 기준으로 모인 형제은 조각을 쳐다봤다. 조금 멀리서 찍힌 사진과 괴수 출현이라는 글자에 형제들은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 떠올렸다. 잠깐 있다가 사라진 로봇. 크기는 오백...미터라고 적혀있었다. 몸 전체가 까맣고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어깨와 척추부분에 뾰족한 가시가 달려있어 마치 팔 다리가 달린 생선같았다. 팔은 좀 길고 휘어졌으며 큼지막한 몸통을 지탱하는 다리는 굉장히 얇았다. 멀리서 보면 다리가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것은 땅을 지탱해서 서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다른 힘으로 서 있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그럼 여기가....”

 

더듬거리며 묻는 이치마츠에게 아츠시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응. 맞아. 로봇의 조종실이야.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정면에는 비슷한 모양의 하얀 로봇이 서 있었다. 광점은 11개. 갑주로 뒤덮인 사람의 형태였으나 팔이 굉장히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은 팔을 대신하듯 긴 촉수처럼 이어진 줄이 늘어져 있었다.

 

“지구를 지키는 것.”

 

부웅-. 다시 공이 움직였다. 로봇이 걷는 진동이 느껴졌다. 군 기지의 옆에는 바다였다. 아츠시는 로봇을 바다 쪽으로 움직였다.

 

“우선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니까. 최대한 바다 쪽에서 싸우는 게 좋아. 물론 상대가 허락을 해줘야겠지만.”

 

로봇이 긴 다리를 뻗어 지면에 닿을 때 마다 건물이 정말 가볍게 부서졌다. 왜 이곳에 사람이 없는 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아츠시는 뒤를 돌아 걷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보며 천천히 뒷 걸음질쳤다.

 

“그런데 어떻게 움직이는 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카라마츠의 질문에 아츠시는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이 녀석은 내 생각대로 움직여. 조종사의 신체 능력에 따라 발휘하는 능력도 다르지. 그래서 신체검사를 한 거야.”

 

상대 로봇 또한 그를 따라 바다 쪽으로 움직였다. 아츠시는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손을 거머쥐고 바로 옆에 놓여진 수많은 같은 의자를 둘러보았다. 두 큰 것들이 바다에 도달한 순간 그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후 눈을 뜨고 상대 로봇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앞으로 쏠리는 중심에 휘청이는 토도마츠를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옆에서 잡아주었다. 아츠시는 의자의 손잡이를 꾹 잡았다. 검은 로봇이 팔을 들고 하얀 것의 얼굴을 내려쳤다. 맞은 상대는 잠시 주춤하더니 짧은 팔로 반격을 하려했다. 하지만 짧은 팔은 닿지 못하고 늘어진 촉수만 조금 닿았을 뿐이다. 그 모습에 오소마츠가 웃었다.

 

“교육이라 상대가 약한 거야?”

 

그 말에 아츠시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빈 틈을 노리지 않고 연속해서 복부와 안면을 강타했다. 상대는 힘없이 맞기만 할 뿐이었다. 아츠시는 미간을 더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 뭐야 시시하네-. 금방 끝나겠는걸-”

 

오소마츠는 눈을 반쯤 감고 팔을 뒤로해 머리를 받치며 말했다. 아츠시는 그 말에 조금 웃었지만 여전히 미간은 찌푸린 채였다.

 

“이번에는 조금 특이하게 약하지만, 평소는 강한 편이니까 방심하지 않는게 좋아.”

“녜녜-”

“진짜야-”

 

그러시겠죠-하는 오소마츠의 대답에 아츠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는 몇 번의 일격을 더 가했다. 상대는 저항이라고는 짧은 팔과 힘없는 촉수로 툭툭 치는 것밖에는 하지 않고, 밀리고 밀려 등에 바위를 얹고 쓰러졌다. 검은 것은 이미 지친 듯 늘어져 있는 상대에게 가까이가 갑주를 한 겹 한 겹 벗겼다.

 

“보통 갑주 밑에 급소가 있어. 이 급소를 없애지 않으면 아무리 부숴도 재생해. 그리고 그 위치는...”

 

순간 하얀 것의 늘어져있던 촉수가 갑자기 검은 것의 다리를 휘감았다. 그 순간 아츠시는 얼굴을 풀고 씩 웃었다. 약하다는 것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뜻도 된다. 아츠시는 많은 전투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물론 보기만 한 것이지만.

 

“이건 때리는 것 말고 다른 기술도 있어.”

 

번쩍

검은 것은 순간적으로 레이저를 뿜었다. 그것으로 인해 상대 뒤에 있는 단단해 보이는 바위가 사라졌다. 깨진다거나 부서진다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굉장해..”

“이건 강하니까. 하지만 저 녀석도 강해. 이런 것엔 끄떡하지도 않아.”

 

허나 하얀 것에게는 일말의 타격도 입히지 못 하였다. 하지만 그는 뒤에서 중심을 잡아주던 것이 사라지자 뒤로 넘어가며 그것의 촉수로 다리가 묶여있는 검은 것도 동시에 넘어갔다.

 

“어...어...”

 

크게 기울어지는 시야에 이치마츠가 당황하는 소리를 냈다. 약간의 진동과 함께 쿵하고 하얀 것 위에 쓰러졌다. 조종석 안이 조금 기울었다. 하지만 로봇이 넘어진 것에 비하면 그렇게 많이 기울지는 않았다.

 

“조종석 안은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으니까, 뒤집어지거나하지 않아요. 조금 있으면 금방 기준을 잡을 겁니다.”

“뭐 여기도 갑주에 잘 싸여...”

 

코에무시의 설명에 아츠시가 덧붙이려다 말을 말았다. 자신의 넥타이 핀을 다시 보고는 움직임을 재개했다.

 

하얀 것은 까만 것보다 덩치가 작았다. 그렇기에 위로 짓눌리는 순간의 충격이 그냥 넘어지는 까만 것 보다 컸기에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까만 것을 묶은 촉수는 여전히 단단했다. 하얀 것은 그것에 힘을 줘 까만 것을 들어 올리려 했다. 조금 붕 뜨는 느낌에 형제들은 당황했다. 허나 아츠시는 표정의 변화도 없이 입을 열었다.

 

“로봇의 형태는 조종사가 정하는 거야. 원한다면 어떤 부위도 떼어낼 수 있지.”

 

그리고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촉수로 묶인 다리를 떼어냈다. 하얀 것은 다리만 들어 올린 채로 여전히 까만 것 밑에 깔려 있을 뿐이었다. 촉수는 들어 올린 것을 던지고 다른 부위를 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 검은 것은 긴 팔로 상대의 가슴께를 관통했다. 그리고는 무엇을 찾는 듯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하얀 것은 괴로운 것 마냥 파닥거렸지만 그 행동은 점차 멎었다.

 

로봇은 동그란 것을 찾아 꺼냈다.

 

“보통 이렇게 생겼어. 모양은 달라도 급소는 똑같이 생겼지. 공평하게 하나야. 그리고 이걸 힘주어 부수면...”

 

파직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빛이 나더니 하얀 로봇의 광점이 사라졌다.

 

아츠시는 개운한 표정으로 넥타이 핀을 빼며 말했다.

 

“이러면 우리의 승리야.”

 

아츠시는 의자에서 내려와 가볍게 착치한 후 마츠노들을 둘러봤다.

 

“교육은 여기서 끝. 나는 이제 다음부터 없을 예정이니까. 더 궁금한 건 코에무시한테 물어봐. 물론 너무 믿지는 말고. 장난치기를 좋아하거든..”

“다른 데로 가는 거야?”

 

토도마츠의 질문에 아츠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았다. 그리고는 넥타이 핀을 그에게 건넸다.

 

“계약 할 때 만나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 사람한테 전해줘.”

 

토도마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 아츠시는 마츠노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의 표정은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밝은 표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인삿말이라도 하려는 순간 다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2. 마츠노 카라마츠

 

 

그들은 다시 건물 앞으로 돌아왔다. 방금의 순간이동과는 다르게 조금은 조심스레 놓여졌기에 다들 잠깐 중심을 못 잡았을 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건물 앞에는 이제는 익숙하게 보이는 군인들과 정장을 깔끔하게 입은 50대의 남성이 있었다. 그는 머리가 조금 세었고, 얼굴에 나타난 주름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나이에 걸맞게 배는 조금 튀어나와 있었지만 자세가 곧았기에 누가 봐도 군인임을 알 수 있었다. 아츠시가 말한게 이 사람인가. 라는 생각에 토도마츠는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넥타이 핀을 내밀었다. 그는 별 표정의 변화 없이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는 여섯 명의 얼굴을 찬찬히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교육은 만족스러웠나.”

“아...네...뭐...”

 

여섯 명의 대표는 항상 오소마츠였기에 그는 모두에게 물은 질문을 본능적으로 자신이 대답하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쉽다느니,시시하다더니 했었기에 조금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군인은 언제인가 온 코에무시에게 말을 했다.

 

“그럼 우선 계약을 먼저 하지.”

 

우웅하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색 판이 올라왔다. 조금 휘어진 네모난 판은 밑에 받침대 마냥 길쭉한 부분이 달려있었으나 그 밑은 땅에 닿지 않은 채 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아까부터 떠있는 것만 봐왔기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게 그것을 바라봤다.

 

“각자 한 명씩 손을 대면 된다.”“네? 그게 전부인가요?”

 

듣도 보도 못한 계약방법에 쵸로마츠가 질문했다. 군인은 그것을 보며 두 번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들은 누가 얘기할 것도 없이 태어난 순서대로 줄을 서 한 명 씩 손바닥을 대었다. 검은색 판은 철같은 느낌으로 매끈했지만 굉장히 차가웠다. 마지막으로 토도마츠가 손을 대고 떼었을 때 코에무시가 말했다.

 

“그럼 계약은 했으니 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이상의 더러운 짓은 보기 싫으니까.”

 

그리고 판은 되감기가 되는 것 처럼 밑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군인은 코에무시의 말에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더러운 것을 보자고.”

 

입으로만 웃으며 그는 형제들을 안으로 들였다.

 

“와 진짜 더럽다.”

 

형제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두꺼운 계약서를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장에 서명을 해야 하는 것을 듣고 머리가 아찔했다. 오소마츠와 쥬시마츠는 그 계약서를 읽지도 않고 서명을 해 내려갔고, 카라마츠 또한 그랬다. 하지만 그는 좀 더 시간이 걸렸는데, 서명을 화려하게 했기 때문이다. 쵸로마츠는 그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이해를 하지 못하여 군인에게 몇 번 물어봤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이치마츠 또한 계약서를 읽었지만 두 장 정도 읽고 나서는 읽지 않고 서명만 할 뿐이었다. 토도마츠는 계약서를 읽지도 않고 내밀며 저는 이 계약서를 전부 읽었고 여기에 전부 동의합니다. 라는 말을 녹음했다. 막내의 행동을 보며 오소마츠와 쥬시마츠도 반 쯤 서명한 계약서를 내팽겨치고 녹음으로 때웠다.

 

쵸로마츠는 계약서에 대부분이 비밀엄수인 것과 인센티브에 대한 것만 알 뿐이었다. 계약서의 말은 오묘하게 뒤엉켜있었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확실히 적혀있지 않았다. 그가 알 수 있는 저 두 가지는 계약서상에서 유일하게 강한 어조로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 끝낸 형제들의 성화에 못 이겨 대충 서명을 하고는 계약서의 복사본을 부탁했다. 군인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중에 방에 가져다주겠노라고 하였다.

 

방에 도착하자 이미 해는 져 있었다. 낮에 있던 군인들은 다들 사라져 있었다. 계약서 작성 후 차려진 만찬에 포식한 그들은 각자의 방이 아닌 거실에 누웠다. 토도마츠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오늘만 해도 뭘 한 거야. 로봇. 계약. 떠있는 인형. 떠있는 의자.”

“꿈 같은데.”

 

그 옆에서 쵸로마츠는 계약서를 읽으며 대답했다. 옆에서 오소마츠가 뭐하러 그런걸 봐 하면서 핀잔을 줘도 무시하면서. 오소마츠는 뭔가 떠오른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말야. 그 녀석.. 코에..? 우리보고 육둥이라고 놀라지 않았지?”

“아 그렇네.”

 

육둥이. 흔하지 않은 숫자인데다가, 일란성이라 너무나도 똑같이 생겨서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신기한 눈으로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눈빛이 어릴 때는 좋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귀찮기도, 질리기도 혹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우리 이력서에 사진하고 붙였으니까-”

“아 그렇게 되나?”

“아냐 하지만 처음 봤을 때 우리한테 ‘이 사람들이군요-‘ 했잖아”

 

토도마츠가 코에무시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하하- 뭐야 그거.”

“똑같지 않아?”

 

너무나도 똑같은 목소리에 다들 웃어버렸다. 토도마츠는 한 번 더 따라 하기 위해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이 사람-.”

“-이군요.”

 

누구야? 자신의 장난을 방해한 사람을 향해 토도마츠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토도마츠가 따라한 목소리의 장본인 코에무시가 있었다.

 

“어?”

 

생각지도 못한 등장에 토도마츠는 당황했다. 표정의 변화가 없이 -인형이니 당연히 없겠지만- 그는 얘기를 했다. 토도마츠는 민망해 하며 그의 시선을 피해 은근 슬쩍 옆에 있는 쥬시마츠의 뒤로 갔다.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보여드릴게 있어서요.”

“보여줄 거?”

“야구??”

 

다시 암전

 

밝아진 빛에 눈을 조금 떠보니 조종석 안이었다. 조종석은 전투의 흔적이 없는 것 마냥 저번과 같은 연갈색의 배경에 고요했다.

 

“아츠시는?”

 

토도마츠의 질문에 코에무시는 대답이 없었다. 그의 의자는 누가 앉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마치 새 것처럼.그 순간 의자로 만들어진 원이 커지고 의자들의 간격이 좁혀지며 중간의 공간을 만들었다.

 

“이제 여러분의 탄창을 넣을 시간입니다. 각자 의자를 생각해주세요.”

“탄창?”

 

단어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각자 자신의 의자를 생각했다. 그러자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스캔을 하는 것처럼 위에서 부터 천천히. 쌍둥이라서 같은 모습의 의자가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것이 기우일정도로 여섯 개 모두 천차만별의 의자가 나타났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가는 것은.

 

“아 이거 오소마츠 형 거네.”

 

장남 오소마츠의 빠칭코 의자였다. 오소마츠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거 편하단 말야-. 하고는 자신의 왼쪽에 있는 사무용 의자를 가리켰다.

 

“이건 네 거구만-. 쵸로마츠.”

“그럼 저건 이치마츠건가..?”

 

쵸로마츠는 고양이 털이 잔뜩 묻은 오른쪽 끝의 방석을 가리켰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의 방석 왼쪽에 있는 파란색 비즈가 잔뜩 붙어있는 의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켁, 쿠소마츠...”

“와- 톳티!! 톳티!!”

“응-”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의자의 왼쪽에 있는 갈색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에 토도마츠가 잠깐 일하던 스타바의 의자였다.토도마츠는 그의 부름에 대답하며 왼쪽 끝에 있는 쥬시마츠의 의자를 봤다. 거실에 있던 분홍색 손 모양 의자였다.

 

각자 자신의 의자에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마츠노 카라마츠’

 

처음 듣는 이질적인 목소리가 평소 불리지 않는 호칭으로 카라마츠, 자신을 불렀다. 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카라마츠는 움찔했다. 긴장감에 휩싸였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는 그만의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다음 차례는 나. 자신의 의자로 가는 도중 그는 움직임을 멈췄다.

 

의자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다가가던 형제들은 움찔했다. 많은 의자가 회전하는 데도 불구하고 바람이나 대기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회전하는 영상을 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압박감은 영상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뭐..뭐야?”

 

그리고 회전은 차츰 멎으며 후에 멈췄다. 아츠시의 의자가 있던 문양의 위의 의자는.

 

“안쓰럽네, 정말.”

“훗.”

 

금방이라도 출격할 것 같이 선글라스를 끼고 폼을 재고 있는 카라마츠의 것이었다. 토도마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에게 말했다

 

“아니 지금 뭘 하는 것도 아니거든? 그리고 저런 의자는 어디서 구한거야! 만들었어?”

 

동생의 태클에도 카라마츠는 여전히 철저히 자기 기준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한물간 락스타의 포즈 같았다. 다리를 크게 벌린 채 한쪽 무릎은 굽히고, 한 손은 허리에 그리고 다른 손은 높게 들어 천장을 가리켰다. 형제들은 그의 모습을 무시한 채로 자신의 의자를 신기한 듯 만져보았다. 카라마츠는 자기 자신의 멋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멋의 기준은 철저히 그 자신의 것이었다. 남이 뭐라고 하더라도 그는 듣지 않고 항상 거울을 보며 자신을 가꿔갈 뿐이었다. 지금처럼 형제들이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아도.

 

“이거 의자 말야. 가져온 거야?”

 

쵸로마츠는 신기한 듯이 사무용 의자를 만졌다. 아주 잠깐 다녔던 회사의 의자였다. 없어지면 큰일 날 텐데...

 

“단지 모양을 조금 빌렸을 뿐입니다. 실체는 그대로 있습니다.”

“영상 같은 거야?”

“복제...라고 하는 편이 쉽겠지요.”

 

쵸로마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일본은 지금 이런 것까지 가능하단 말야? 평생을 살아온 국가에 대해 아는 것이 이렇게 없다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제 이 국가를 위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쵸로마츠는 자신이 쥐고 있던 계약서 뭉치들을 눈치 챘다. 장소를 옮기면서 같이 옮겨진 것이리라. 그것을 넘겨보며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모를 말들과 어찌 생각하면 자신에게만 너무나도 불리한 조약들. 어쩌면 국가란 국민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야 뭐하냐?”

 

옆의 의자에 앉은 오소마츠가 말을 걸었다. 쵸로마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그러고 보니 의자의 배치가 방에서 잘 때의 배치와도 같았다. 물론 그 배치는 자주 바뀌고는 하지만, 20여 년간 같이 살아오면서 나름의 규칙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이 배열마저도 머릿속에서 복제한 걸까. 쵸로마츠는 약간의 위화감이 들었다.

 

코에무시는 그런 그들을 보다가 한 바퀴 크게 휭 돌아 형제들의 시선을 모은 후 말했다.

 

“우선 오늘은 수고가 많으셨으니 그만.”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방이었다. 거실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시간은 오후 열 시를 넘기고 있었다.

 

일이 많은 하루였다. 그러나 그들은 피곤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이 꿈만 같았고 믿겨지지 않았기에. 잘 생각도 없이 자신의 감상이나 놀라움을 표현하며 떠들었다. 그런 그들을 막은 것은 방에 울리는 스피커의 소리였다. 합격을 축하하는 목소리와 같은 목소리였다. 딱딱하고 어쩌면 기계같은 말투.

 

“취침 시간입니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수련원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느끼는 개인 공간에 그들은 조금 긴장했다. 가족이고 가끔은 마음이 잘 맞는 형제지간이라지만 서로를 위해 조금은 배려하는 것이 각자에게 조금 있었다. 개인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모두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안도의 한숨과 자유에 대한 기쁨의 한숨, 지독한 외로움의 것도 있었다. 그들은 공평하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스피커의 소리로 잠이 깬 그들은 어색하게 일어나 방을 나왔다. 아직 혼자 자는 것이 어색한 지 조금은 피곤한 기색이었다.

 

계약서에 적혀진 대로 그들은 조종을 하는 것을 예외하고는 매일 훈련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계약서를 읽은 쵸로마츠 뿐이었고, 그는 형제들에게 설명을 하느라 고역이었다. 또한 유일하게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토도마츠의 것은 압수를 당했다. 토도마츠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 부담감 없이 군인에게 주었다. 후에 업무용 기기를 따로 주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훈련이란 체력을 기르는 트레이닝 시간과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에 관련한 책을 받는 것 뿐. 그들은 훈련을 받으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였다. 가끔 그들을 지켜보는 군인이 몇 명 서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트레이닝을 도와주는 것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 뿐. 그것이 시간을 알려주고 해야 할 일을 정해주며, 종료 시각을 알려주었다.

 

카라마츠는 훈련이 시작된 이후로 각자 개인 시간이 되면 코에무시를 불러 조종석 안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기만의 전투를 하는 시뮬레이션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코에무시에게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은 대부분 상대의 것이 아니라 이 로봇의 것이었다. 이 로봇의 능력치나 치유 능력 혹은 어떤 각도에서 가장 멋있는 지 따위였다. 코에무시는 그런 시시한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든지 그가 원하면 조종석으로 이동시켜주었다. 이유를 묻자 그것이 자신의 의무인 것이라고만 말하였다.

 

“어째서 이렇게 연습을 하는 거죠?”

“빛나는 연극이란 뒤에서 수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연극. 카라마츠는 고등학교 때 연극부였다. 자신감이 넘치고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는 그로써는 가장 잘 맞는 부였다. 그는 주연을 따내지는 못하였지만 작은 조연이라도 항상 제일 늦게까지 연습을 하고, 집에 와서도 형제들이 대사를 다 외울 만큼 노력을 했다. 비록 한두 줄의 대사뿐이지만. 하지만 그는 욕심이 없었다. 단지 무대에만 서면 행복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조종석의 의자에 앉는 순간 그는 주연이 된다. 그것도 형제들 중 가장 처음으로 주연이 되는 것이다. 처음 그것을 아는 순간 그는 온몸에 흐르는 전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무대의 역할에는 경중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경우에는 달랐다. 무엇을 하든 그는 눈에 띄고 싶었다. 항상 눈으로 주연 배우를 좇고 있었고, 그의 대사를 몰래 외우기도 하였다. 혹시 주연 배우의 대타라도 뛸 가능성을 위해서. 하지만 그의 역할은 대타는 커녕 항상 대본 중간에서 이어주는 한두 줄의 문장이 전부였다.

 

그는 무대경험자로써 형제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 무대의 무게를. 그리고 멋진 자신의 첫 주연을 위하여. 그래서 지금 그는 이렇게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이다. 조연일 때 보다 더 열심히. 연극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코에무시에게 카라마츠는 질문을 하였다.

 

“내 상대는 누구지?”

“네?”

“상대 배역을 알아야 좀 더 이입이 잘 될 것 같거든.”

 

코에무시는 그런 그를 쳐다보다가 늘어진 44개의 의자를 둘러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걸 알고 싸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O.K. 즉흥극이로군.”

 

카라마츠는 자신의 선글라스를 쓰며 말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연습하던 연극의 장르를 알게 되었다. 즉흥극은 보통 대본이 짜여 진 극보다 더 많은 집중력을 요한다. 상대의 대사나 행동에 맞춰 받아치되, 극 자체의 주제를 놓치면 안 된다. 지금 그가 연습하는 극의 주제는 당연히. 자신의 멋진 승리다.

 

“연습보다는 센스의 문제로군. 물론 이 나의 센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하니 상관이 없겠어.”

 

그의 혼잣말에 코에무시는 대답이 없었다.

 

카라마츠는 그 이후로 평소 보다 더 로봇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슨 행동을 한다던가, 코에무시에게 이것저것 물어 본다던가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의자에 앉아 개인 공부용으로 받은 연기 기본서를 읽어볼 뿐이었다. 환경에 익숙해져야지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기에.

 

그리고.

 

드디어 극이 시작되었다.

 

시기는 교육이 끝나고 나서 2주째가 되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훈련을 하고 있던 그들은 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조종석으로 옮겨졌다.

그들이 서있는 곳은 이제. 바닥이 아니라 각자의 의자였다. 토도마츠는 아츠시와 동등해졌다는 기분이 들어 조금 기뻤다. 자신의 의자와 아츠시의 것은 같은 높이에 있었다.

 

연갈색의 화면이 사라지고 밖의 풍경이 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뛰고 있었던 운동장이 보였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높이였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그렇게 궁금했던 상대방을 바라봤다. 상대역을 보는 순간 그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뭐지?”

 

상대는 두 개의 로봇이었다. 회색의 똑같이 생긴 두개의 로봇. 광점은 한 쪽에만 있었다. 다섯 개. 인간 형이라고 하기는 애매했다. 마치 원숭이의 모양 같았다. 허리를 굽히고 긴 팔을 늘어뜨리고 다리는 굉장히 짧았다. 그 두 개는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역할을 되새겼다. 지금 자신의 역할은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 피해를 최소화 해야한다는 마음에 그는 바다로 로봇을 옮기려 바다 쪽으로 로봇의 몸을 뒤로 돌렸다. 그 순간 광점이 없는 쪽이 그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까만 것의 척추를 긴 팔로 세게 내려쳤다.

 

쿵. 하고 조종석이 흔들렸다. 카라마츠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코에무시가 놀리듯 지적했다.

 

“조심하셔야죠. 동의도 없이 등을 돌리다니.”

 

카라마츠는 다시 로봇을 뒤로 돌렸다. 뒤를 돌자 다시 조종석이 크게 흔들렸다. 회색이 다시 일격을 날린 것이다. 균형을 잡지 못해 기우뚱 넘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진 까만 것의 위로 올라탄 회색 원숭이는 계속해서 검은 색의 머리를 내려쳤다. 큰 소리와 진동에 정신이 없었다.

 

“연습한 것이 무색하네요.”

“...시끄러.”

 

카라마츠는 어지러운 머리를 잡고 코에무시의 비꼬는 말을 낮게 받아쳤다.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 두 개의 원숭이 중 광점이 있는 녀석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이고, 없는 녀석만이 움직였다. 이 둘 중에 하나에게만 급소가 있다.

 

그럼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에 급소가 있는 것인가? 괜히 헛발을 짚으면 질 수도 있다. 다른 한 쪽을 쓰러뜨려도 반대쪽이 남아있으니까. 불리해진다.

 

카라마츠는 문득 즉흥극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상대하는 것은 무대 위의 상대지, 그 외의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까.

 

쿵 쿵 거리는 일격에도 가만히 있는 카라마츠에게 바로 옆의 토도마츠가 소리를 질렀다.

 

“아 카라마츠 형! 뭐라도 좀 해! 이러다 지겠어!”

“지면 어때-. 다시 하면 되쟝?”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상태를 살피며 능청스레 말했다. 그의 말에 코에무시가 옆으로 날아와 반박했다.

 

“지면 큰일나죠. 지구가 없어져 버리는데.”

“뭐?”

 

코에무시는 평소와 같은 일상적인 어투로 말했다.

 

“교육 때 듣지 않으셨습니까. 이 지구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아니, 그냥 지키는 것 아니었어? 그 왜 만화처럼...”

 

쵸로마츠의 말에 코에무시는 날아가 카라마츠의 옆에 섰다. 그리고 카라마츠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지는 순간 이 지구는 사라집니다. 원래 없던 것처럼 말이죠.”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었다. 회색 원숭이는 어느샌가 그 긴 팔로 검은색의 갑주를 벗기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로봇의 다리를 들어 무릎으로 회색을 걷어찼다. 원숭이는 그 행동에 날라 갔다. 생각보다 가벼워.

 

카라마츠는 다시 검은색을 우뚝 세웠다.

 

그리고는 날라간 회색에게 달려들어 짓밟았다. 그제서야 광점이 있는 회색이 달려왔다.

 

“역시.”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광점이 있는 회색은 보지도 않고 광점이 없는 회색에게만 일격을 가했다. 그리고 아츠시에게 배운 대로 그의 가슴팍에 팔을 꽂고 안을 휘저었다. 하지만 잡히는 것이라고는 갑주 조각 뿐이었다. 당황하는 순간 광점이 있는 쪽이 까만 것을 밀쳤다. 다시 휘청거렸다. 그는 다시 광점이 없는 쪽에 달려들었다.

 

“쿠소마츠. 빨리 끝내.”

 

이치마츠가 옆에서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형제들도 그의 행동에 의문을 품고 답답해하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조연일 때 뿐만 아니라 주연일 때라도 응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광점이 있는 쪽은 굉장히 약했다. 그것이 하는 행동은 밀치는 것뿐이었다. 카라마츠는 광점이 없는 쪽을 필사적으로 잡아 보이는 데로 일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발버둥 같았다.

 

“하하. 뭐야 웃기네.”

“원래 저렇게 꼴불견으로 움직이는 거야 저거?”

 

오소마츠는 그 행동을 보며 웃었다. 카라마츠가 필사적일 수록 쵸로마츠의 말 처럼 꼴불견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는 결국 회색의 급소를 찾아냈다.

 

“훗 Good bye-.”

 

그리고 자신이 연습하던 가장 멋진 대사로 끝을 냈다. 급소에서 빛이 나며 광점이 사라졌다.

 

“켁 이제야 끝났네.”

“수고했어 형- 멋지진 않았지만.”

 

양 옆에서 들리는 비난같은 칭찬의 소리를 들으며 카라마츠는 항상 옷에 걸쳐두던 선글라스를 꼈다. 처음의 주연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주제는 이루었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배역을 잘 이루어 냈다. 물론 싸움터가 되었던 운동장과 그 주위의 건물들은 무너졌지만.

 

카라마츠는 다리를 꼬며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안쓰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후-Nice Play 였다. 상대여.”

 

그의 말을 듣지 못할 상대는 엉망진창의 상태로 누워있었다.

 

“아 정말 안쓰럽네-”

 

라며 토도마츠가 카라마츠를 툭 쳤다. 그 순간 카라마츠는 힘없이 쓰러졌다.

 

 

 

3. 마츠노 -

 

“사체는 어떻게 할까요?”

 

코에무시가 쓰러진 카라마츠를 부축하는 토도마츠 옆에 날아와 질문했다.

 

“사체?”

 

토도마츠는 그 말을 듣고 본능처럼 카라마츠의 코 밑으로 손가락을 대보았다. 숨을 쉬고있지 않았다. 발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쭈뼛한 느낌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옆에 있는 오소마츠의 옷깃을 잡았다. 오소마츠는 떨고 있는 토도마츠를 보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아닐거야. 라는 생각으로 카라마츠를 안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맥박이 뛰지 않았다.

 

“구급차! 전화!!!”

 

오소마츠는 급박하게 토도마츠에게 소리를 질렀고 토도마츠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이미 군인에게 뺏겨버린 핸드폰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있을거야.있어야해. 라고 중얼거렸다. 쵸로마츠와 쥬시마츠는 오소마츠의 고함을 듣고 나서야 카라마츠 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옆의 이치마츠는 굳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장난 치는 거야? 그만해. 재미없으니까.”

 

쵸로마츠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웃으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허세를 부리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구급차를 불러서 뭐에 쓰시게요? 아, 그겁니까? 장기기증? 지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 사체까지 바치다니 멋지네요.”

“무슨 소리야.”

 

오소마츠는 비꼬듯이 말하는 코에무시를 노려봤다. 평소와 다른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를 보며 쵸로마츠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았다. 쵸로마츠는 울면서 병적으로 주머니를 뒤지는 토도마츠를 저지하고, 카라마츠의 선글라스를 벗겼다. 평소처럼 안쓰러운 눈을 뜨고 있었을 것 같았지만 그 기대가 무색하게 그는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큰 인형을 조종하는 댓가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나요?”

 

코에무시는 카라마츠 옆으로 날아와 모두를 비웃듯 말했다.

 

“이 인형이 움직이는 원동력은 인간의 생명입니다. 지구를 위해서 한 명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 정도는 싸지 않나요?”

“....그럼... 아츠시도...?”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토도마츠의 눈앞으로 날아온 코에무시가 말했다.

 

“물론이죠. 그의 사체는 이 인형 안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보다시피 크니까요. 여유 공간은 충분합니다. 지금 사체도 그렇게 해드릴까요?”

“웃기지마!!”

 

오소마츠는 소리를 지르며 옆에 떠 있는 코에무시를 잡으려고 했다. 코에무시는 이를 비웃듯 높은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는 분노에 올려다보며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는 오소마츠를 보았다.

 

“이 쪽 세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군요.”

“......그럼 다음 차례는 누구야?”

 

이 질문을 한 것은 쵸로마츠였다. 그 질문을 듣자마자 오소마츠는 코에무시를 향해 휘두르던 주먹을 쵸로마츠에게 날렸다. 순간 얼굴을 맞아버린 쵸로마츠는 뒤로 넘어져버렸다. 오소마츠는 크게 숨을 쉬고 날라 간 쵸로마츠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평소 같았으면 소리를 지르며 역으로 공격했을 그는 가만히 들어 올려졌다. 쵸로마츠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화가 났다거나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단지 체념하는 표정이었다. 오소마츠는 그 얼굴에 더 화가나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지금 카라마츠가 이렇게 됐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해! 다음 차례의 녀석도 이렇게 돼버리니까!”

 

쵸로마츠는 크게 소리쳤다. 그의 소리는 오소마츠를 향한 것이 아니라 코에무시를 향한 것이었다. 오소마츠는 그의 소리에 움찔하고는 행동을 멈췄다. 쵸로마츠는 눈을 날카롭게 뜨고 떠 있는 흰색의 물체를 바라봤다. 눈에는 눈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쵸로마츠는 쇳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마치 발악같았다.

 

“다음 차례 누구야!”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코에무시는 그의 고함에도 꿈쩍하지 않고 그 위치에 서있을 뿐이었다. 형제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에는 두려움과 걱정 공포가 섞여 있었다. 오소마츠는 설마하는 생각으로 다른 동생들을 둘러봤다. 쵸로마츠와 자신은 아닌 것이 확실하고, 혹시나 울고 있는 막내동생이 아닐까. 아니면 아까부터 굳어있는 이치마츠?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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