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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라] 시작

점원이치x가라


*알티이벤으로 쓴 글입니다.

*공미포 8333자






‘아, 진짜 일을 그만 둘까.’

이치마츠는 출근하며 인생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일해 온 시끌벅적한 선술집은 작지만 꽤 맛 좋은 튀김으로 유명한 데다, 콘서트 장이 가까운 번화가에 있어서 꽤 바쁜 곳이다. 그런 덕분에 특정 시간에 상관없이 꽤 붐빈다. 특히 자신이 하는 서빙은 혼자서 하기 버거울 정도다. 하지만 일할 사람이 구해지지 않아, 혼자서 작지만 꽤 많은 손님을 수용하는 곳을 맡고는 한다. 그래도 오랜 기간 일한 덕분에 고된 일이나 늦은 퇴근이 익숙해지고 있다. 익숙해진 일에, 가까운 거리의 직장, 자신의 기준에서는 좀 많은 월급에 지금의 생활을 만족하는 그였지만, 최근 한 손님 덕분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받는 고백을 자신에게 주구장창 해대는 손님 때문이다.


“왔어?”

“오셨어요?”

“일찍 오셨네요―.”

집에서 가까운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하는 종소리가 울리고, 주방장 겸 사장과 주방 보조 두 명이 오픈된 주방에서 반갑게 맞아준다. 매일 보면서도 항상 반갑게 인사해주는 게 이치마츠는 꽤 고마웠다. 처음 일이 서툴 때에도, 다들 그런 거라며 딱히 혼을 내지도 않았었고 오히려 일이 많은 데도 잘 하고 있다며 응원을 해주고는 했다. 하지 않는 편이 그에게는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낯가림이 심한 이치마츠가 이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기도 하다. 마음과는 다르게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하는 그는 고개만 주억이는 인사를 하고는 문을 닫았다. 오래되었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풍기는 식당은 오픈 준비를 하는 중이라 아직 손님은 없었다. 조금 있으면 두 개의 테이블과 주방을 향해 앉을 수 있는 바에도, 사람이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모임을 위한 작은 방에도. 이치마츠는 스탭룸으로 가기 위해 천천히 안 쪽으로 향했다. 스탭룸 옆에 있는 작은 방에 시선이 닿았다.

아. 여기.

이치마츠는 시선이 닿자마자 걸음을 멈추었다.


단체손님을 위한 방이라고는 해도 여섯 명이 앉으면 꽉 차는 곳.

그 작은 방에서부터 이치마츠의 꿈같던 나날과 함께 고민이 시작되었다.

두 달 전, 평소 예약을 받지 않는 시스템으로 운영하던 가게가 어쩐 일로 예약을 받았던 날이었다. 사장이나 주방 보조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 그마저도 물어볼 만큼 특이한 일이었다. 그의 질문에 나이가 꽤 있어 가수를 잘 모르는 사장은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그와 연령대가 비슷한 보조들은 신나게 입을 열었다.

“아, 거기? 여기 근처 콘서트 장에서 콘서트 끝나고 회식한다던데? 아는 사람이라 받아줬다.”

“들으면 놀라실 걸요! 요즘 잘 나가는 록 밴드!”

“오늘 전 멤버가 이 쪽으로 온다고요! 제가 오늘 서빙할까요?”

진심어린 농담에 이치마츠는 고개만 저었다. 잘 나가는 록 밴드라는 말에 조금 설레기는 했지만, 자신은 좋아하는 가수가 따로 있었기에 그리고 그 가수는 ‘잘 나가는’ 이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단지 퇴근이 늦어지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근처에서 퇴근길에 가끔 만나는 길고양이를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한숨만 쉬었다. 시끄럽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칭 뮤지션이라는 것들은 허세를 가득 담고 일하는 사람에게 막대하기 일쑤였다. 그게 이치마츠에게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꽤 경험했던 일을 기억하자 머리가 아파왔다.

‘그나마 기본 손님이 적은 평일이라 다행이지. 맞던가. 오늘이 며칠이지.’

주방에 걸려있는 달력을 봤다. 어라. 예의 그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날과 오늘이 같았다. 티케팅을 실패해 가지 못했기에 날짜는 정확히 기억한다. 유명하지 않았기에 근처의 콘서트 장에서 딱 하루만. 그런데. 오늘이던가? 달력을 잘 보지 않은 채로, 늦게 일어나서 출근을 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날짜에 머리를 긁었다. 어찌되었든 콘서트 날은 오늘이고, 오늘 그 콘서트를 한 사람들이 온다, 이치마츠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비고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그 날짜가 맞았다. 불현듯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길고양이를 돌보는 것 외에는 딱히 취미가 없어 보이는 이치마츠는 꽤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인디 록 밴드가 있다. 취미가 없냐는 말에 그렇게 대답을 하면 락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인다며 농담이 아니냐는 소리를 종종 듣고, 혹은 그 밴드가 꽤 유명하지 않았기에 설명하는 것에 지쳐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말하는 건 좋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에 지친 것이다. 처음에는 흥미롭게 듣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가 되면 지루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그의 말을 끊고 화제를 돌리고는 했으니까. 그리고 이치마츠는 그 화제를 다시 돌릴 만큼의 용기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요즘에는 바빠서 예전처럼 직접 발로 뛰어 찾아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콘서트 날짜 정도는 외울 정도로 여전히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온다면. 그리고 전 멤버라고 했으니까. 거기서 그가 가장 좋아했던 그 사람이 온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문득 최근 그 밴드가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소식이 생각났다. 텔레비전이 없는 작은 방에 사는 그는 방송을 보지 못해 후에 재방송을 볼 생각이었다. 실력이 있는 밴드니까 금방 뜰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이치마츠는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여기서 괜히 실수라도 저지르면 큰일이다. 긴장을 하면 자신이 제어가 안 되는 편이기에 최대한 생각을 돌려보았다.

‘아니지 않을까. 혹은 다른 시간대에 다른 밴드가 공연을 할지도 모르고….’

침착해야 된다. 아닐 거야. 아니야. 생각을 계속 되짚으며, 이치마츠는 몰려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은 기쁜지 슬픈지도 모른 채로 맞아버렸다.


이치마츠는 이 일이 꽤 마음에 든다. 성격 상 일을 할 수 있는 거라곤 단순 노동 뿐이었지만, 체력이 없는 몸이 받쳐주지 않아 오래할 수 없었고, 이렇게 무뚝뚝하게 손님을 대해도 괜찮은 식당을 찾기에는 하늘의 별 따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피하고 싶어 하지만 속으로는 꽤 아니 엄청 좋은 그가 거의 매일 찾아오는 것도. 나는 좋으니까. 그런 그가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와 내가 어울리는 사람인가.


이치마츠는 고개를 휙 돌려 방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작은 방의 바로 옆에 있는 스탭룸의 문을 열었다.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케비넷을 열었다. 어제도 입었었던, 유니폼인 까만 티가 곱게 접혀있었다.

‘그대는 이런 색 마저도 잘 어울리는 빛나는 사람이군!’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치마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봤다. 하지만 좁은 스탭룸에는 자신 밖에 없었다. 이치마츠는 한숨을 폭 쉬었다. 자신의 인생의 고민을 만들어 준 사람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아는 사람들만 알았지만 최근에 확 떠버린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 본명은 카라마츠. 통칭 가라라는 이름을 쓰는 그는 안쓰러운 표정에 쓸데없이 좋은 목소리. 그리고 기분 나쁠 정도로 자신을 추켜 세워주는 말들을 하며 지금 몇 주째 자신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빛이 났다. 길을 가다 무심코 들어갔던 지하 콘서트 장에서 어두침침하고 좁은 무대에서, 형광등보다도 못한 조명을 받으면서도 신나게 기타를 치던 그는 정말 빛이 났었다. 그 의상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에서. 그 표정과 움직임, 손놀림이 만들어 내는 음악들이. 하나 같이 전부 다. 자신에게 내뱉는 안쓰러운 말마저도 이치마츠에게는 빛나보였다.

그런 사람이 나랑 어울릴 리가 없잖아.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었다. 아니 그 때는 단지 멀리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더 가까이 올수록 그렇게 생각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


처음. 손님이 다 빠져나가는 시간인 새벽 1시쯤에 들어온 그들 중 카라마츠만이 이치마츠에게 아는 척을 했었다. 예전부터 사인회나 작은 공연까지도 따라다녔던 이치마츠였기에 기억을 하는 건 당연지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을 기억해준 그에게 이치마츠는 더 벅찬 감정이 올라왔다. 카라마츠의 말에 다른 멤버들도 그제야 기억이 나는 듯 팬이 아니었냐면서, 여기서 일하는 줄은 몰랐다느니 왜 콘서트에 오지 않았냐는 등의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최소한의 사회성도 없는 이치마츠는 붉어진 얼굴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주문을 받고, 그걸 실수하고 실수한 걸 눈치도 못 채고, 결국 사장이 나와 사과를 하고는 했었다. 아는 척을 했던 카라마츠가 무안해할 만큼 대꾸를 제대로 못한 자신의 행동에 기분이 나빴을 법도 한데, 그는 유난히 다정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왔었다. 항상 작은 선물을 들고서 안쓰러운 말을 하면서도 말이다.

카라마츠가 해온 모든 말을 이치마츠는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닌데 기억하고 있다. 집이 좁은 데도 그 작은 선물들을 다 보관해 두고 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마 카라마츠가 자신을 발견하기도 전 부터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을 테니까. 정말 당연하게 받아줄 수 있는 문제였지만 항상 자신감이라는 게 가로막고 있었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빛나는 그가 자신에게 가까이 올 때마다 자신의 그늘이 더 진해지는 게 보여서, 나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에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작은 희망이 있기는 했다. 다정하니까 이해해주지 않을까. 이런 내 더러운 사랑도 받아주지 않을까.

이치마츠는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앞치마를 세게 묶었다.

“오늘도, 오겠지.” 이치마츠는 혼자 중얼거리며 캐비닛을 닫았다. 낡은 철문이 끼익하고 소리를 내며 대답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오겠지.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아니. 왔으면 좋겠다.

그냥. 보고 싶지만. 가까이 하고 싶지만.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마츠노씨. 계속 이렇게 둘 거예요?”

이치마츠가 스탭룸에서 나오자 주방보조가 말을 걸었다.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치마츠가 미간을 찌푸리자 주방보조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가라말이에요. 이쯤이면 받아주는 게 낫지 않아요?”

“아-. 맞아, 맞아. 싫으면 싫다고 하는 게 더 나을 지도 몰라요-. 뭐, 싫진 않겠지만.”

다분히 놀리는 말에 이치마츠는 고개만 내저었다. 다들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르는 게 이상하겠지. 이치마츠는 평생 남을 좋아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그 감정을 숨길 줄 몰랐다. 거의 항상 오는 그를 봐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물을 엎는 등 사소한 실수를 하기도 했었고, 눈을 마주보지도 못했다. 간단한 주문을 받는 대화에서도 목소리가 떨렸고, 대답을 못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카라마츠가 내뱉는 모든 말을 들을 때는 귀를 최대한 기울여서 들었다.

하지만 대놓고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이치마츠는 괜히 민망해 입술만 깨물었다. 그런 그를 놀리던 그들은 결국 사장에게 혼이 나고는 일을 시작했다.


주말인 오늘은 유달리 바빴다. 오픈을 하자마자 손님이 들이닥쳤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마감시간이 되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이치마츠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나서 이치마츠는 가게 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뒤에 대고 놀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안 왔네요.”

“그러게-. 마츠노씨 서운하겠다―.”

뭐라고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사실이었기에 이치마츠는 가게 문 앞에 걸린 OPEN표지를 CLOSED로 뒤집기만 했다. 퇴근길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늘따라 길고양이가 많았지만 이치마츠는 거기에 신경도 쓰지 못 할 만큼 충격에 휩싸여있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말았다던가. 아니면 질렸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직장은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그건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자신의 방에 놓여 있는 카라마츠의 선물들이 담겨있는 박스에 괜히 신경질이나 그걸 들어 버리려했다. 하지만 이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바빠서 하루정도는 오지 않았겠지.’

라는 생각을 해보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하루정도는, 이틀정도는, 일주일정도는, 이 되어서야 이치마츠는 퇴근 후 잘 쓰지 않았던 컴퓨터를 켜서 보고 싶은 그의 이름을 검색하고 그의 스케줄을 따라 읽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날짜를 잊고 사는 편이지만 그가 없어진 이후로는 꾸준히 달력을 보고 있었기에 그가 오지 않은 날짜부터 스케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그날 이후로 투어 콘서트라는 단어가 적혀있는 걸 보고 안심을 했다. 그래. 진짜 바빴던 거네.

“말이라도…해주지.”

괜히 서운한 느낌에 이치마츠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찾아가고 싶었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에게 어울릴까라는 생각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태평했다.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그 짧은 기간 동안 이치마츠는 깨달았다. 자신과 그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즈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없어지니 불안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고, 걱정이 되었다.

투어 콘서트는 오늘로 끝이었다. 내일 그가 돌아오면 좋겠다.

그럼 그 때는 꼭 그에게 자신의 말을 하고 싶었다.


“지쳤다. 맥주 먹고 싶어-.”

“그러게-. 아 저번에 먹었던 곳 맛있었는데. 그렇지?”

마지막 콘서트를 끝으로 호텔에 기듯이 들어온 오소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받아쳤다. 저번에 먹었던 곳이라는 말에 카라마츠는 움찔했다. 분명 이치마츠가 일하는 곳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곳에서 회식을 한 이후로 매일 그곳에 간다는 것 즈음은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개인시간이니 존중하자는 분위기여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콘서트 날 전 날까지 찾아가는 바람에 투어 기간 내내 눈치가 보였다. 늦게까지 술을 먹었다며 매니저에게 크게 혼났고, 결국 숙취에 쩐 그대로 무대에 올라 멤버이자 형제인 모두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멤버들 중 가장 자기관리가 투철했던 카라마츠여서 다들 별 말없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어라-? 카라마츠 형 왜 그렇게 놀라?”

눈치가 빠른 토도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그 가게에 자주 가는 건 이치마츠 때문이라는 걸 그에게 들켰다간 금세 소문이 날 테니까. 장난이 많은 형제들은 그 사실을 알면 분명 자신 몰래 그에게 접근을 할지도 모른다.

“나…, 나는 졸려서. 이만.”

“뒤풀이 안가?”

“잠의 여신이 날 부르고 있….”

“안쓰럽네. 진짜! 빨리 들어가!”

평소와 같은 척 꽤 폼을 잡고 말하자 토도마츠가 못 볼꼴을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손을 흔들었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찝찝하지만 씻을 여력이 없었다. 체력적으로 피곤한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더 피곤했다.

거실에서 형제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웃는 소리도 섞였고. 그러고 보면 자신은 이치마츠의 웃는 표정을 그 때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놀란 표정. 혹은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도 않았고 무슨 말을 해도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그를 처음 봤던 건 아마 사인회였었다. 보통 손을 잡는다거나 가벼운 인사말이라도 해주는 팬들이 대다수였건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마스크를 덮어쓴 이치마츠는 꽤 눈에 띄었다. 꾸준히 사인회에 참석은 했지만 말도 섞지 않았고, 이름은 글씨로 적어 보여주기만 했다. 이치마츠라고 적힌 그 글자만. 그냥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하고 넘겼었지만, 콘서트를 하던 도중 맨 앞자리에서 처음 보는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이치마츠를 보았다. 항상 자신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해왔던 카라마츠였건만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생각을 고쳐먹었다. 잊혀 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표정을 위해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을 예능프로그램도 언젠가부터 사인회나 콘서트에 오지 않게 된 이치마츠를 위해 형제들을 설득해 수락했고, 그로인해 꽤 이름이 났고,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했던 이치마츠를 운이 좋게도 뒤풀이 장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솔직히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영화처럼 다시 만난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꽤 로맨틱한 -카라마츠의 기준에는- 고백에도 꿈쩍도 않는 그에게 좀 지쳐있기는 했다. 투어 콘서트 내내 혹시 그가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실현도 되지 않는 생각을 했다. 그 때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을 응원하던 그가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자신의 팬일 텐데도. 어째서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왜 나를 향해서 웃지 않는 걸까.

내일이면 다시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일주일의 투어 콘서트를 끝마친 보상으로 꽤 긴 휴가가 주어진다. 내일 다시 한 번만 그를 만나서 제대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항상 그는 바빴고, 자신은 컨디션 유지를 위해 일찍 들어가야만 했다. 일하는 그에게 주문을 하는 겸 선물을 내밀었고 음식이 나오면 감사의 뜻과 함께 고백의 단어를 내뱉고는 했다. 자신의 말이 바쁜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자신은 아직 가능성이 있다.

“내일. 내일 다시.”

카라마츠는 그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치마츠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천천히 출근길에 나섰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했지만 가슴은 꽤 설렜다. 오늘 이후로 카라마츠의 스케줄은 비어있었다. 아마 그들 나름의 긴 콘서트 후 휴식기간을 가지기 때문이겠지. 보통 몇 달간 주말만 하는 다른 콘서트와는 다르게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했느니 피곤하기도 하리라.

‘다시 온다면 잘해줘야지‘

이치마츠는 무언의 다짐을 하고는 식당의 문을 열었다. 평소처럼 자신을 반기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스탭룸 옆에 있는 작은 방을 습관처럼 봤다. 작은 방 안의 두 개의 테이블에는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예약석이라는 팻말이 놓여있었다. 오늘도 무슨 회식이 있는 걸까. 이치마츠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옷을 갈아입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바빴다. 이치마츠는 나가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는 굽혔던 허리를 폈다. 가게의 시계를 보니 자정을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퇴근 시간인 새벽 두 시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도 안 왔네.’

이치마츠는 소리 없이 한숨을 쉬고는 방금 나간 손님의 상을 치웠다. 그릇을 잔뜩 들고 주방으로 옮기는 도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서오세요.”

습관처럼 말을 내뱉고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약을 했습니다만.” 아.

이치마츠는 순간 들고 있던 그릇을 떨어뜨릴 뻔 했다.

“이야-. 오랜만이네. 안으로 들어와.”

사장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그가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이치마츠. 항상 먹던 걸로 부탁하지.”

카라마츠 이후로도 꽤 많은 손님이 들어왔다. 이치마츠는 바빴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잘해줘야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여전히 그는 소심했고 게다가 카라마츠는 바나 테이블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지나가며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그가 주문한 걸 들고 잠깐 방에 들어가 안부를 나눈 것이 전부. 그 마저도 카라마츠가 먼저 건넨 말이었다. 혼자 있기는 큰 방에 왜 혼자 예약을 했는지. 콘서트는 잘 끝났는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왜 말을 해주지 않았는지.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금방 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더 얘기를 하고 싶은데. 이치마츠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항상 그가 먼저 다가왔으니까 이제는 자신이 다가가도 될 것이다. 아니 안 된다 하더라도 혹여 오늘이 마지막으로 온 것이라도 자신은 갈 것이다. 이치마츠는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비장하게 주방에 콜을 넣었다.

“가라아게 하나 해줘.”

“응? 주문이요?”

“아니 내가 살 거니까.”

아-. 하며 알겠다는 표정으로 주방보조는 끄덕였다. 이치마츠는 시계를 봤다. 한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슬슬 술을 추가하거나 안주를 추가할 법 한데도 방에 있는 그는 자신을 부르지도 않은 채로 문을 닫고만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평소처럼 작은 선물도 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이치마츠는 괜히 더 걱정되는 마음에 목 뒤를 긁으며 방을 쳐다봤다.


으아. 카라마츠는 머리를 잡았다. 도쿄는 방금 올라왔다. 그러니까 밤 열한시 쯤. 차가 밀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짐을 풀지도 않은 채로 씻고 옷만 갈아입고 곧바로 여기로 달려왔다. 자정 안에 만나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시간을 지키는 편이 아니지만 오늘이라는 날에 그를 만나고 싶었다. 도착하니 자정이 넘어버려 맥이 빠졌지만. 문을 열고 이치마츠를 보자 그제야 자신이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관심이 있는 이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서툴다. 그래서 그런 물질적인 거라도 내밀었던 건데. 자신을 보며 놀라는 표정의 이치마츠에게 어색하지 않게 주문을 하고, 그에게 가벼운 안부도 물었지만 어색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만큼 더 어색하고 민망했다. 오늘이야 말로 제대로 그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부탁에 부탁을 더해 한 명인데도 불구하고 방을 예약했건만, 이런 꼴이라니.

술이라도 더 먹으면 용기라도 좀 생기지 않을까라는 멍청한 생각까지 닿았을 때 방의 문이 열렸다. 이치마츠였다. 카라마츠는 화들짝 놀라 굽혔던 허리를 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앉아있던 척을 했다.

“무, 무슨 일인가?”

“…이거. 좋아하죠.”

탁하고 테이블에 그릇을 내려놓았다. 가라아게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시킨 적은 없었다. 항상 그냥 기본 안주에 사케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메뉴판을 잘 보지 않았으니까. 테이블이나 바에 놓여 있는 건 알지만 그것보다 이치마츠에게 더 눈이 갔으니 어쩔 수 없다. 무거운 그릇을 들었을 때 팔에 힘이 들어가는 거라던가, 술에 취한 손님을 생각보다 쉽게 제압하는 거라던가. 주문을 확인한다며 읊어줄 때의 집중해서 미간을 찌푸린 표정 같은 것들 말이다.

“어떻게 알았….”

“…예전 인터뷰에서 말했으니까.”

그랬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뻤다. 카라마츠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고 있을 것이다.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를 연주하는 것 보다 더 설레는 감각이었다.

“이거 먹고,”

꿀꺽. 카라마츠는 자신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민망하게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췄다. 혹시 이 소리가 들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카라마츠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조금만… 기다려줘요. 조금 있으면 끝나니까.”

아. 카라마츠는 방금 생각이 바뀌었다. 이치마츠는 환하게 웃는 표정도 멋지지만. 지금처럼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표정이 더.


방의 문을 닫고 이치마츠는 씩 웃었다. 좋아. 해냈어. 하려면 할 수 있잖아.

퇴근시간이 유난히 기다려졌다.

이런 묘한 관계의 시작은 카라마츠였지만, 이 관계의 목적지의 시작은 자신이 먼저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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